‘감세’ 남발하는 여야, 재원 대책은 나 몰라라… 세수 10조 펑크 위기 [심층기획-22대 총선 공약 점검]
정부·여당, 금투세 폐지 등 천명
민주당은 세액공제 한도 상향
단발성 아닌 지속적 세수 타격
부족분 상쇄 방안도 없어 심각
정부도 나서 대규모 감세 정책 발표
2024년 국세감면액 77조… 감면율 16.3%
관리재정수지 대폭 ‘마이너스’ 관측
전문가 “2024년 GDP 대비 4%대 적자”
정부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감세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어서다. 여당은 이에 화답하며 총선 주요 공약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대로 금투세가 폐지되면 내년에만 세수가 1조5000억원가량 덜 걷힌다. 이 외에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등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에 달하는 세수 감소를 가져올 공약이다.
야당도 이 같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직장인 세 부담을 완화한다며 체력단련비와 통신비 등을 소득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에는 소득세를 물가에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세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먼저 금투세는 주식·파생상품 등 펀드·채권을 양도할 때 발생하는 소득에 매기는 세금으로, 과세 대상은 15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세율은 과세표준 3억원 이하에 20%, 초과분에 25%를 각각 적용한다. 국내 상장주식 및 공모 주식형 펀드에서 발생한 금투세에 대해서는 5000만원, 기타 금융투자소득에 대해서는 250만원을 각각 공제한다.
금투세는 당초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2022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합의로 2년 유예돼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일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에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며 금투세 폐지를 선언한 데 이어 여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금투세 폐지로 당장 내년에만 1조5000억원가량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금투세가 내년부터 시행된다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 4조328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여야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증권거래세는 지난해 들어 0.23%에서 0.20%로 인하됐고, 올해 0.18%, 내년에는 0.15%까지 낮아진다. 증권거래세 인하로 5년간 세수는 10조원 이상 줄어든다. 정부와 여당이 금투세 폐지와 거래세 인하를 동시 추진함에 따라 금투세 부과로 증권거래세 인하에 따른 세수 부족을 채우려던 당초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여당은 임시투자세액공제도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조치로, 공약대로 연장되면 세수 1조5000억원이 줄게 된다.
여기에 비수도권 대상 준공 후 미분양 주택 과세 특례, 상반기 카드 소득공제 확대, 노후자동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감면 등 정부·여당발 감세 공약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야당도 감세 공약을 남발하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자산 매매수익에 대한 공제 한도를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상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만 과세 시점은 오는 2025년으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나아가 소득세 근로소득 세액공제의 기준과 한도를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공제를 가족 구성원 1인당 연 150만원에서 연 200만원으로 높이고, 근로소득자 본인의 체육시설 이용료에 대해 연 200만원 한도로 15% 세액공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여기에도 통신비·자녀 예체능 교육비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나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어 더욱 가관이다.
야당은 게다가 소득세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 각종 공제제도 등을 물가에 연동시켜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세 부담을 기존과 같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예를 들어 물가가 연 3% 올랐다면 과표구간 기준금액도 3% 상승시키는 방식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임금 하락을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세수는 준다. 소득세 물가연동제가 200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 과정에서 도입을 주장한 뒤 여러 차례 논의됐지만, 정부 반대로 번번이 실패한 배경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세 공약을 내놓으려면 세수 추계와 구체적인 시행계획 등이 함께 제시돼야 하는데, 최근 나오는 공약에는 이런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재원 마련 없이 즉흥적으로 제기한 감세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무책임한 선동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여당과 정부는 시행령을 바꾸는 방식으로 실제 (감세 공약) 집행을 할 수 있는 만큼 더욱 책임감 있는 공약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감세 공약에 매달리는 동안 국가 재정은 점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344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조9000억원 감소했다. 2023년 본예산에서 전망한 400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56조4000억원이나 부족해, 역대급 ‘세수펑크’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지난해 세제 개편을 통해 대규모 감세정책을 단행했다. 정부의 올해 조세지출보고서를 보면 국세 감면액은 2020년 51조원에서 2024년 77조원으로 늘어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정부가 걷어야 할 돈을 감면해주는 것으로, 각종 조세특례 등에 따른 감세라 할 수 있다. 민간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세 감면율은 16.3%로 국가재정법이 권고하는 법정 한도(14%)를 넘어섰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3.9% 수준이다. 정부는 GDP 대비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상태로라면 2020년 이후 5년 연속 3%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선거용 감세정책이 쏟아져 실현되면 GDP 대비 4%를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 교수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는 4%대를 기록하고, 내년에도 3%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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