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은 왜 ‘수병 없는’ 군함을 바다로 내보냈나[박성진의 국방 B컷](2)
한국군은 징병제 토대에서 충분한 인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집단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구 감소의 충격으로 한정된 인구를 놓고 군대와 사회가 경쟁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와 같은 인력수급 혜택이 사라진 탓이다. 국가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인구 감소는 군인 충원과 부대 병력 유지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육·해·공 3군 간, 간부와 병사 간 병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부사관·장교만 근무하는 함정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말이 있다. 제일 급하고 필요한 사람이 그 일을 서둘러 하게 돼 있다는 뜻이다. 병력수급 불균형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인식한 해군이 혁신적인 실험에 나섰다. 해군은 최근 병사 없이 승조원 전원이 부사관과 장교 등 간부들로만 이뤄진 군함 1척을 바다로 내보냈다. 일종의 시범 운용이다. 해군이 전략무기 잠수함이 아니라 수상함 승조원을 간부들로만 채운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해군 병사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수병(병사) 모집이 어려워진 탓이다.
해군은 출생률 저하 등으로 인한 병력자원 부족의 직격탄을 맞았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입영 기준으로 해군의 병사 지원율은 ‘0.2:1’이었다. 이 때문에 추가 모집을 3차례나 해야 했다. 공군 지원율(2:1)과 큰 차가 난다.
해군 병사 지원율이 급락한 가장 큰 이유는 육군보다 긴 복무기간과 스마트폰(휴대전화) 탓이다. 해군복무 20개월 동안 6개월간은 함정 근무를 해야 한다. 해군은 함정 근무기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유심칩을 제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회와의 단절에 큰 두려움을 갖는 세대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다. 해군이 지난해 5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해군 입대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긴 복무기간과 함정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이었다.
해군은 병사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해역에서는 항해 중에도 유심칩을 제거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함정 근무기간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고 함정근무병 추가수당 지급과 조기 진급, 복무지역 선택병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유인책도 육군은 물론, 대도시에서 복무할 확률이 높으면서 수시 외박과 휴가가 가능한 공군과 견주면 역부족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승조원 모두를 간부로만 채운 함정 운용이다. 갈수록 첨단화하는 함정에서 승선기간이 짧은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함정 근무기간 4개월로는 함정에 설치된 첨단장비를 제대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군은 전원 간부들로만 이뤄진 잠수함 생활 노하우를 수상함에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실험과 그 분석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해군 내부에서는 병사 부족 현상을 극복하면 오히려 전투력 증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력 절감’에 진심인 까닭
해군이 인원 구성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군은 장기적 차원의 함정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소수 인원으로 항해하는 대형 민간 상선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인력 절감형 함정을 건조해 적은 숫자의 승조원으로도 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해군은 전투체계 등의 통합운용 설계 등으로 함정 1척당 승조원 수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1800t급인 214급 잠수함도 1200t급인 209급 잠수함보다 무장체계만 늘어났을 뿐, 승조원 수는 40여명으로 같은 수준이다.
해군이 함정당 인력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구 절벽 시대의 여파로 해군 병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병력 부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전장 환경을 고려하면 해군이 운용해야 할 함정 숫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해군으로서는 미래형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함정 1척당 근무 인력 줄이기 등을 통한 인원 구성 개편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함정을 운용할 수 있는 병력 숫자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의 도발 가능성을 높이면서 해군 현대화에 나서고 있다. 북한 해군은 핵무장까지 가능해 도발 위험지수가 갈수록 오르고 있다. 북한이 전략핵잠수함(SSBN) 건조 움직임을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해군도 미국의 협조를 끌어내 최소한 핵추진잠수함(SSN) 건조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 해군은 서해를 내해화하려는 중국 해군도 견제해야 한다. 한·중 해군은 서해에서 124도 E선을 놓고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24도 E선이 한·중 간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은 중국 바다가 된다. 향후 중국 해군은 서해에서의 항모 이착함 훈련을 통해 한반도 공역으로 전투기를 수시로 들여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인 카디즈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한국의 ‘해양·공중 권익’ 패싱이다.
중국 군함의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잠정 등거리선 침범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중국은 이어도 인근 해역에도 수시로 함정과 항공기를 보내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 분쟁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해군도 전력 증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소에서 ‘붕어빵 찍어내듯’ 밀어내기식 군함 건조를 하는 중국 해군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도 중국의 행보는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의 해상교통로 안전을 언제 위협할지 모른다. 2030년이면 중국 항모는 5~6척으로 늘어난다. 미 해군은 중국의 양적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태평양 바다에서 한국 해군이 연합 해군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해군이 작전 반경을 확대하려면 더 많은 함정 건조가 이뤄져야 한다.
항모가 없는 한국 해군 전투단은 중국 항모에서 수 분 내에 발진한 전투기의 위협에 위축돼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에 십상이다. 경항모는 NLL을 넘어 큰 틀의 국가적 해양 이익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최소 억지력’이라는 의미다.
독도 해역은 일본의 도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곳이다. 2018년 연말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은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시사해준 사건이다. 북한을 제외한 주변국과의 갈등은 해상 전면전보다는 군사적 대치 상황과 같은 저강도나 회색지대 분쟁일 가능성이 크다. 일종의 ‘어깨싸움’이다. 여기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해군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병력을 보면 한국 해군은 4만1000여명이고, 북한 해군은 6만여명, 중국 해군은 25만명(추정)이다. 한국 해군은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라는 현실에서 그 숫자를 더 늘리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대신 효율적인 인력 배치로 대처해야 한다. 해군이 함정에서의 병사 의존도를 줄이고, 함정당 탑승 병력 줄이기에 진심인 까닭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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