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야구장에서, 노래방에서 울려 퍼진 ‘역주행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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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많은 비가 내렸다.
비를 생각하면 여러 노래가 떠오르지만,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가수에게나 역사적으로나 사연이 있다.
이 노래는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가수 손인호가 1956년에 부른 '비나리는 호남선'에서 차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노래방에서 20대도 부르기 시작하면서 '남행열차'는 모든 세대가 좋아하는 위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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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많은 비가 내렸다. 비를 생각하면 여러 노래가 떠오르지만,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가수에게나 역사적으로나 사연이 있다.
이 곡은 정혜경 작사, 김진룡 작곡으로 1987년 김수희가 발표했다. 당시에는 흥행을 예감하지 못해 레코드(LP) B면 두번째에 수록됐고, 실제로도 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이 노래는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가수 손인호가 1956년에 부른 ‘비나리는 호남선’에서 차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곡은 당시 제3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호남선을 타고 가다가 열차 안에서 급사한 신익희 후보를 지칭한다는 소문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신익희의 사고보다 노래가 먼저 나왔다.
1990년대를 맞이한 김수희는 어느 날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대학생 사이에서 ‘남행열차’가 인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 팬들이 이 곡을 응원가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무렵 노래방 열풍이 불었다. 이때 ‘남행열차’는 다시 한번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트로트는 나이 든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미지로, X세대인 1990년대 20대들은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행열차’는 달랐다. 노래방에서 20대도 부르기 시작하면서 ‘남행열차’는 모든 세대가 좋아하는 위치에 올랐다. 이후 노래방 히트곡 순위에서 늘 상위에 오르는 빅히트곡이 됐고, 회식 노래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를 다퉜다.
작곡가 김진룡과 김수희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곡이 히트 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공식적인 활동 중에 얻은 성과가 아니다 보니 ‘남행열차’의 인기를 실감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 된 후라고 밝혔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렇다면 ‘남행열차’의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대가 좋아하는 빅히트곡은 멜로디가 쉽고 단순하며 음원 길이가 짧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행열차’가 그런 곡이었다. 지금 보면 ‘역주행송’이었다.
또한 뛰어나면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낭중지추(囊中之錐)도 떠오른다. 전 국민에게 지지받는 것은 분명히 그 이유가 있다. 아마도 떠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을 역설적으로 흥겨운 리듬으로 날려버리는 형식이 1990년대 한국인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켰을 것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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