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일 의원<상>] 되찾은 배지의 무게
양경규·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21대 국회 임기는 오는 5월 29일까지로, 3달 남았다. 국회는 이미 총선체제에 돌입해 국회의원들은 각자의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텅 빈 국회의원회관에 최근 4개의 사무실이 새로 꾸려졌다. 지난달 비례대표직을 승계받은 김근태·김은희 국민의힘 의원과 양경규·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실이다. '4개월 의원'인 이들이 이제 3개월 남짓 남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총선도 얼마 안 남은 터라 언론의 관심도 온통 총선에 쏠려있다. 이들의 의정활동은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렸다.
각자 자신의 분야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기에 할 수 없다고 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겠다고 한다. 설령 지금 이뤄지지 않더라도 다음 국회에서 작은 불씨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들의 의정활동이 의미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의회 고유의 업무에 마지막까지 충실하기에. <더팩트>는 비례대표를 승계한 김근태·김은희 국민의힘 의원과 녹색정의당 이자스민·양경규 의원을 만나 이들이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들었다.
이자스민·양경규 의원은 지난 총선이 끝난 뒤 정치를 잊고 각자의 분야에 매진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각각 이은주 전 의원의 사퇴와 류호정 전 의원의 탈당으로 비례대표직을 승계받았다.
'40년 노동운동' 경력의 양 의원은 노동운동에 당 활동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노동정치연대를 만들어 진보정당 운동을 통일시키자는 운동도 벌였다. 노동조합 내에서는 공공운수노조의 지도위원을 하고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국제노동연대기구인 아시아노동정보센터(AMRC) 이사장을 맡았다. 당내에서는 의견그룹이자 사회운동단체인 '전환'을 만들어 대표직을 수행했다. 그러면서 가욋일로 팟캐스트 <붉은 오늘>을 진행했다. 갑작스레 국회의원이 된 후 겸직 금지 조항에 따라 다 그만뒀다. 양 의원은 웃으며 "임기가 3개월 남았는데 3개월 후에 뭘 해야 하나 싶다"고 했다.
유일한 이주민 출신의 재선의원인 이 의원도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해왔다. 다문화와 관련된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고 2022년 7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사회문화분과위원을 지냈다. 대통령직속 기구였지만 입법권이 없어 정책으로 반영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의원은 "관계 부처에 여러 제안을 했는데 법 개정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보니 잘 반영되지 못했다"며 "21대 국회가 얼마 안 남았지만 그때 아쉬웠던 점들을 반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두 의원은 위성정당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국회에 입성하고도 남았을 순번이었다. 이 의원은 "정의당은 유일하게 원칙을 지킨 정당이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불리한 상황이 된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녹색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회의 끝에 모인 결론이었다. 아쉽지 않을까. 양 의원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결국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양 의원은 "어차피 선거제도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거대정당의 것이고 이들의 선의를 바라는 방식으로 선거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제3지대를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정의당이 취한 행동을 보면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위성정당으로 피해를 본 건 사실이지만 그 핑계만으로 현재 정의당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제도를 고치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본질적인 건 본질적인 건 정의당이 어떤 당인지 국민들에게 정확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3지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은 바로 거대양당과 정책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며 선명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거의 평생을 국회 밖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그에게 국회는 조금 낯설다. 노동운동이 권력을 향한 투쟁이라면 국회는 권력의 공간이다. 가령 상급단체 위원장이라 해도 관계 부처 장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다르다. 양 의원은 "어느 정도의 권력인지 모르겠다. 의원으로서 그 권력을 선하게 쓰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밖에서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조건을 갖고 요. 핵심은 제가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아니라 정치인이라는 것"이라며 "노동운동은 지금 당장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 해도 싸운다. 지금 내가 지더라도 다음 사람이 이기면 되니까. 국회의원은 그렇지 않다. 문제를 실용적으로, 실무적으로 해결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지금도 현장에서 투쟁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해결방안을 최선을 다해 찾아주는 게 제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3개월 정도 남았는데 이 시기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싶다.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후 첫 일성으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 현장을 방문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달 27일에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고 왔다. 그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노동자와 가장 가까운 의원이어야 한다는 게 저의 의무이자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 분야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양 의원은 "평가 하나 마나"라며 "노동정책에 대해 모든 나라의 보수정권은 기업 중심의 정책을 펼친다. 우리나라는 민주당 또한 다르지 않다"며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거대양당이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정부가 우려되는 점은 따로있다. 윤석열정부는 노동조합을 '기득권카르텔'로 규정하고 노동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노조때리기'에 앞장서 왔다. 양 의원은 이를 노동운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양 의원은 "군사독재 시대에는 때려잡는 게 일이었다. 문민체제가 들어서면서 제도적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아주 큰 틀에서 보면 윤석열정부로 넘어오면서 제도권 내에서의 통제는 물론 군사독재 시절의 강압적인 통제구조를 병행하는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조금씩 진전되어오던 민주주의의 단절, 혹은 퇴행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퇴행은 곧 폭력"이라고 윤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한 번의 국회 경험이 있는, 최초의 이주민 출신 재선 국회의원이다. 독특한 점은 19대 국회에서는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했지만 이번에는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 소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라면 법안 발의할 때 정도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에서는 의원이 많다 보니 공동발의 해주는 의원들이 많았다. 지금은 6명이라 공동발의를 부탁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주민 정책에 있어서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눈에 띄는 정책이 없다. 이주민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린다. 19대 국회에서 한번은 모 지역의 이주민들이 지역구 의원을 찾아갔는데 그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일인데도 '이자스민 의원에게 가 보라'고 했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그 19대 국회 이후로 지금까지 이주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저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주민이 250만 명인 데도"라며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론화할 수 있는 스피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부·여당, 그리고 21대 국회의 이주민 정책에 대해 "8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 의원은 "아직 '이민자'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문화가족지원법과 외국인처우기본법에 재한 외국인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에 대한 것이지 이민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한다"며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엔 아동협약을 비준한 나라인데 아직 기본적인 출생등록제도 만들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서 제가 발의했던 이민사회기본법도 아직 제정이 안 됐다"라며 "정부는 출생률이나 노동력 확보 등을 위해 이주민을 늘리려 하는데 정작 이주민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틀조차 없는 상황이다. 반가운 건 이민청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8년 전만 해도 반감이 컸다. 다만 기본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민청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의원 고유의 업무는 입법이다. '4개월 의원'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좋은 법안을 낸다 한들 이번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원회도 열리지 않는다. 양 의원은 "쉽지 않겠지만 법안이 준비됐고 발의됐다는 걸 확인시키겠다. 이번 국회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국회의 누군가가 제 법안을 손보거나 참고해 법안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금 초단시간 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도"라며 "이번 회기에 제출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새 국회에 오는 분들에게 넘기는 게 좋을지 여러 노동단체와 협의하는 중이다. 3·8 여성의날과 연동해 돌봄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도 준비하고 있다. 지금 계류 중인 법안들도 있다. 또 외국인 투자 규제 관련법도 보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관련해 '먹튀' 자본을 제재하는 법안을 책임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첫 번째 입법으로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발의했던 '이민사회기본법'의 제정을 꼽았다. 그는 "비례대표직을 승계받고 국회 본회의에서 선서할 때도 이민사회기본법 제정을 약속했다. 물론 지금 총선을 앞두고 법안 심사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관심을 가지시는 의원님들이 있다"며 "선거가 끝난 뒤 토론회 등을 함께 하자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방송법에 '문화 다양성'을 포함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라며 " 아직 언론 등 미디어에서 이주민을 희화화하거나 부정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있다. '웃자고 한 것'이겠지만 이주민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한 사람들에게는 차별과 편견이 강화된다. 지금 시간이 얼마 없는데 많은 의원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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