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태아 성별과 낙태는 무관”… 이젠 여아 선호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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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부인과 진료실에선 의사와 예비 부모들 사이에서 선문답 같은 알쏭달쏭한 대화가 흔히 오간다.
초음파 검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아기 옷은 무슨 색깔이 좋을지, 어떤 장난감을 준비할지 등을 묻는 식이다.
서구에선 임신 4, 5개월쯤 의사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고 부모는 이를 기념하는 성별 공개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임신 32주까진 의료진이 태아 성별을 알릴 수 없게 한 법조항 때문에 부모들이 눈치껏 성별을 알아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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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이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37년 전 제정 당시 팽배했던 남아 선호 사상이 확연히 퇴조했고, 대부분의 낙태가 성별을 알지 못하는 임신 10주차 전에 이뤄진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다만 재판관 9명 중 3명은 성별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남아 선호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원하는 성별로 자녀를 한 명만 낳으려 할 경우 성별에 따라 낙태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다.’ 여아 선호로 인한 낙태 가능성 역시 우려된다는 취지다.
▷재판관들은 여아 선호를 보여주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비중 있게 인용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응답자 중 59%는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답했는데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절반 수준인 34%에 그쳤다.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답변은 모든 연령대에서 아들보다 더 높게 나왔다.
▷여아 선호 현상은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자식은 가계에 기여할 노동력이자 부모의 노후 대책 성격이 강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딸보단 아들이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 양육이 ‘고비용’ 그 자체인 요즘엔 그런 공식이 적용되기 어렵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직장을 포기하고 육아만 할 경우 기회비용이 일단 크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을 못 잡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가 많다. 자녀의 경제력은 부모 세대를 넘어서기 어렵고, 노후 돌봄은 자녀가 아닌 국가의 몫으로 옮겨가고 있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가치는 정서적 친밀감이다. 키울 때 애교가 많고, 노후엔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건 아들보단 딸인 경우가 많다. 딸은 정서적인 면에서 평생 보험이란 말도 있다. 또 맞벌이 부부들 중에는 “육아에 할애할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모 말에 잘 따르고 빨리 철드는 딸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구 전문가들은 남아를 선호했던 나라 중에 한국처럼 급격하게 여아 선호로 바뀐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최근 여아 선호 현상은 저성장, 청년실업, 열악한 육아 환경 등 우리의 고질적 문제와 연결돼 있어 ‘한국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해결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인 만큼 태아 성별 공개를 무작정 허용해선 안 된다는 헌재 재판관들의 소수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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