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작품이 되는 순간[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관객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한밤의 미술관 작품을 집중적으로 찍어 온 사진가 페르난도 마키에이라는 아마도 북새통의 미술관에 질려 버린 사람이 아닐까. 그의 목표는 관객의 유무에 따라 예술품 자체가 달라진다는 비밀을 포착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실로 고적한 어둠 속에서 작품들은 관객이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혹은 그렇게 드러나도록 마키에이라는 사진을 찍는다. 마키에이라의 사진대로라면, 우리는 사실 한 번도 예술품의 진면모를 본 적 없는지도 모른다. 관객이 모여드는 순간 예술품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거니까.
우리도 마키에이라처럼 호젓하게 유명 작품을 대면하고 싶다. 오랫동안 작품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엄청난 권력자나 미술관에 거액의 기부를 한 재력가라면, 좀 더 호젓한 환경에서 관람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전시 작품 설치 중에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 없이도 누구보다도 호젓한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술관 청소부다.
청소부는 관람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면서 전시의 스포트라이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시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작가, 큐레이터, 관장, 학예실장, 후원자 등 전시 성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획과 작품과 성원 없이는 전시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러나 전시 기간 내내 청소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전시는 불가능하다.
청소부에게도 어느 순간 전시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 그치고 그 자신 관객이 될 기회가 온다. 이를테면 미술관 전시 시간이 끝나 모든 관객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을 떠올려 보라. 이제 청소부는 조용히 자기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바로 그때야말로 예술작품을 관람하기 최적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파에 휩쓸리지 않아도 되고, 성가신 관람 규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젓한 환경에서 작품을 응시하는 거다.
나는 이 사진보다는 독일 태생의 미국 사진가 프리츠 헨레가 찍은 뉴욕 현대미술관 청소부 사진을 더 좋아한다. 얼핏 보면, 청소부가 청소 와중에 청소를 멈추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사진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소부의 시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어느 특정 예술품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우리는 청소부가 어둠 속에 빛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다. 청소의 와중에 어둠 속에 서서 밝은 쪽을 고요히 응시하는 모습, 거기에 깃든 모호함과 위엄. 이제 이 청소부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처럼 보인다. 그렇다. 헨레는 관객으로서 청소부를 찍은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청소부를 찍은 것이다.
1년여 전 이 헨레의 작품 오리지널 프린트를 사서 거실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가끔 생각에 잠긴다. 그 사진을 보다 보면 일상에 깃든 예술성을 느끼기도 하고, 새삼 뉴욕의 미술관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오늘만큼은 어지러운 거실을 청소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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