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손실액 2달 만에 1조 원 넘어…90% 넘는 재투자자들 구제받을까

김수미 2024. 3. 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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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만기 원금 1조9851억
상환 9308억 그쳐… 손실률 53.1%
90% 넘는 재투자자 배상이 관건
DLF 분쟁 때 배상비율 40∼80%
일각 “상황 달라 DLF보다 낮을 것”

은행권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이 곧 H지수 ELS에 대한 책임분담 기준안(배상안)을 내놓기로 한 가운데 손해배상 비율은 해외 금리연계파생상품(DLF)의 분쟁조정 당시 40∼80%보다 낮게 책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관건은 90%에 달하는 재투자자들에 대한 보상 기준이다.

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에서 2024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불거진 가운데 지난 2023년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지수 ELS 피해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이 판매한 H지수 ELS 상품의 만기 도래 원금은 1월부터 2월28일까지 1조985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9308억원이 상환되면서 손실액은 1조543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확정 손실률은 평균 53.1%이다.

2021년부터 14조원 규모로 판매된 H지수 ELS의 만기 상환 금액은 올해 상반기에만 10조원에 달해, 현재 손실률대로라면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이번 주말인 9~10일 전후로 H지수 ELS 관련 책임분담금 기준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DLF 사태 당시 당국은 6가지 유형별로 40~80% 범위에서 배상 비율을 제시했다. 기본 배상비율은 55%, 최고는 80%에 달했다. 

DLF의 경우 상품 설계 자체의 문제가 지적되며 감독당국이 불완전상품으로 인정했다.
반면 H지수 ELS는 상품 자체가 아닌 판매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 등을 고지하는 ‘설명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쟁점이다.

은행들은 “설명의 의무 이행 여부는 사례별로 갈릴 수 있지만, 불완전판매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은행별 ELS 판매 한도 관리 등의 내부통제기준과 판매 사례별 문제를 따지는 복잡한 과정과 다양한 배상 비율이 적용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재투자자에 대한 배상 기준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 조사결과 은행·증권의 가입자 90% 이상이 1회 이상 사전 투자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한번 ELS에 가입한 투자자는 만기에 수익을 내면 다시 같은 상품에 재가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입자들은 “단순히 여러번 상품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원금손실 등의 위험성까지 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홍콩이 망하지 않는한 손실이 나지 않는다는 은행원의 말을 믿고 가입했다”고 항변한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률적으로 ‘재가입자는 (보상 대상이)안 된다, 증권사는 (조정대상에서) 빠진다’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밝혔다. 
금융소비자단체들도 “ELS에 손실경험이 있는데도 재가입한 경우에는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보고 배상에서 이 부분을 제할 수 있지만, ‘이익’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실배상에서 제외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과거 ELS 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의 일부를 손실액에서 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LF 분쟁조정시에도 재투자자의 배상액은 투자 횟수나 파생상품 손실 경험 등 항목에 따라 5∼10%포인트씩 깎인 바 있다. 

판매사들이 ‘적합성의 원칙’을 지켰는지 여부도 관건이다. 적합성의 원칙이란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권유할 때 소비자의 재산, 투자경험 등을 사전에 분석해 소비자의 성향에 맞는 상품을 권유할 의무를 말한다. 

H지수 ELS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고령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상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가입자의 20%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의 선제적인 배상을 독려했지만, 은행들은 DLF 사태 때처럼 상품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잘못된 선례를 남길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자칫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손실이 나면 금융사가 무조건 배상해야 한다’는 그릇된 희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서 “H지수 연계 ELS의 판매액은 DLF보다 훨씬 많아 배상규모도 엄청나기 때문에 금융사의 건전성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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