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합창계 대부’ 나영수 한양대 명예교수 별세

이혜인 기자 2024. 3. 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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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합창단 창단, 21년 이끌어
예그린 창법 만들어 기틀 다져

국내 최초 국립합창단을 만들어 ‘한국 합창계의 대부’로 불리는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가 지난 2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유족에 따르면 나 교수는 지난 2일 오후 2시56분쯤 분당제생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 교수는 1938년 3월12일 만주에서 태어나 함경북도에서 자랐다. 1949년 겨울 가족과 함께 월남해 대구 경북중·경북고에서 성악을 배웠다. 서울대 성악과 재학 중 KBS합창단 창단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962년 국내 최초의 뮤지컬 극단인 예그린 합창단원으로 들어갔다. 1963~1964년 1년간 서울민속가무단에서 합창단을 지휘하며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1966년 ‘2차 예그린악단’의 합창 지휘자를 맡았다. 우선 가사를 말로 낭송하게 한 뒤 나중에 노래하게 하는 ‘예그린 창법’을 만드는 등 한국식 합창의 기틀을 닦았다.

1970~1972년 MBC TV 초대 합창단장을 거쳐 1973년 5월 국립가무단 합창단 지휘를 맡게 됐다. 이는 1974년 7월 창단 공연을 거쳐 1975년 1월에 정식 창단하는 국립합창단의 시작이 됐다.

수많은 노래들이 고인의 손을 거치며 합창곡으로 거듭났다. 그는 합창단이 한국의 맛이 나는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4년 국립합창단 창단 공연 시 판소리 ‘심청가’ 중 ‘뱃노래’의 편곡을 작곡가 김희조씨에게 맡겨 민요 합창곡으로 만들었다. ‘몽금포타령’ ‘새야 새야 파랑새야’ ‘세노야’ 등 한국어 합창곡 600여곡이 나 교수의 의뢰를 거치며 합창곡으로 거듭났다. 많이 불리는 복음성가 ‘이 믿음 더욱 굳세라’도 나 교수의 손을 거친 곡이다.

나 교수는 국립합창단을 이끌고 지방 연주를 다니며 전국에 시립합창단 수십곳이 생겨나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76년 한국합창총연합회 설립을 주도했고, 3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합창제를 개최했다. 1982~2003년 한양대 성악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국립합창단은 3대 단장, 7대 단장을 역임하며 21년간 이끌었다. 이후 성남·서울·울산시립합창단 지도, 울산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2013년 이후에는 지방시립합창단 객원 지휘를 맡았다.

음악공로상(1992), 한국합창대상(1995), 한국뮤지컬대상(1995), 백남학술상(1999), 예술문화대상(2002), 백남상(2017)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미정씨와의 사이에 1남1녀로 나윤선씨(재즈 가수)·나승렬씨(사진작가), 사위 인재진씨(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총감독), 며느리 민선주씨(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5일 오전 7시, 장지는 용인서울공원이다. (031)787-1503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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