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봄

기자 2024. 3. 3. 2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1942~2012)

문득 봄이 문 앞에 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의 전령들이 도착했다. 봄이 오려면 폭설을 이겨 낸 바람이 필요하다. 눈과 입이 틀어막힌 채 “썩은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봄을, 바람이 달려가 “흔들어 깨”운다. 그리하여 “눈 부비며” 기어이 봄은 온다. 풀들을 일으키며 온다. 강물을 깨우며 온다. 지쳐 쓰러진 그림자들을 업고 얼어붙은 문들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온다.

이성부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에 수록된 이 시는 1974년에 나왔지만, 지금 우리들의 염원을 대신 노래한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벨라루스의 시인 얀카 쿠팔라의 시 ‘그래도 봄은 온다’가 떠오른다. 두 편의 시가 서로에게 말을 건다. 당신 나라도 우리의 슬픔과 다르지 않군요. 슬픔이 봄을 만들었군요. 그러니까 눈부신 봄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군요.

봄이 곧 만개할 꽃들을 데리고 와서 문을 두드린다.

이설야 시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