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개선 ‘물꼬’…일본 기업 외면에 ‘지속가능성’은 의문

정지혜 2024. 3. 3. 18: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 1년… 성과와 과제
해법 발표 후 양국 정상회담 7번
韓·美·日 협력 강화 기반 등 성과
일본 측 소극적 태도 등 문제 꼽혀
추가 승소로 지급 대상 더 느는데
재단 기금 한정적… “무대책” 지적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한국 정부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이 나온 지 6일로 1년이 된다. 수년째 교착 상태이던 한·일관계 개선의 매듭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실질적인 해법 이행과 관련, 일본 측의 소극적인 태도와 참여기업 저조 등으로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 모습. 뉴스1
정부는 지난해 3월6일 강제동원 피해 관련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발표했다. 승소가 확정된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재원으로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한다는 게 해법의 골자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차 소송 당사자 15명 중 해법을 수용한 11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했고, 거부한 나머지 4명 몫에 대해서는 법원에 공탁하는 방법으로 고려 중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공탁금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이 불수용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제3자 해법을 거부하는 피해자 측에 대해서는 양측이 공감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잇따른 2차 소송(9건·피해자 기준 52명) 배상 확정판결의 경우 승소 피해자 측 의사를 파악해 해당자에 배상금 등을 일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재단 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피해자들의 배상금 수령 의사는 긍정적인 편이며 모든 피해자 접촉에는 두세 달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자 함으로써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한 것은 지난 1년의 외교적 성과로 분석된다. 해법 발표 이후 지난해 한·일 정상은 7번 회담을 하는 등 급속히 관계가 복원됐고, 한·미·일 협력 강화 기반도 마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지난해 5월 정상회담에서 피해자위로 발언,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공동참배 제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한국 시찰단 수용 등으로 호응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원해야 하는 재단 기금이 한정적인 점, 일본 기업의 저조한 참여 등은 해법의 지속 가능성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에 따르면 재단이 확보한 기부금은 포스코가 출연한 40억원을 포함한 약 41억6000여만원이다. 재단은 이 중 25억여원을 해법을 수용한 피해자 측에 지급했고, 해법을 거부한 피해자 측에 공탁금으로 12억여원을 지출할 예정이다. 남은 기금으로 2차 소송 피해자에게 지급할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추가 승소에 따라 지급 대상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재단 측은 “자발적 기여를 통한 재원 확충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일본 측에서는 재단에 낸 돈이 거의 없고, 포스코에서 크게 한 번 낸 것 말고는 푼돈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새로 판결이 나오더라도 배상할 돈이 없는데 무대책인 셈”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약 20년간 쌓아 올린 사법부의 판단, 피해자 입장이 있는데 정부가 ‘돈 주고 정리하면 된다’며 너무 쉽게 생각한 채 정교한 노력과 설득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재단 기금 고갈 문제가 일시적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는 “신규로 대법원 판결 나온 분들이 50억원 정도 지출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 나올 부분을 합치면 200억∼30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총선 때문에 기업들이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낼 가능성은 없다고 보여 기금 부분만 해결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국가가 약속을 했는데 기업이 기부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고 기업도 전부터 약속한 내용인 만큼 선거가 끝나면 해결될 부분으로 관측된다”고 전망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