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법원부터 각성해야

한겨레 2024. 3. 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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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 모습.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지난달 말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지배주주 일가의 이익을 일반주주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 우리나라 주식 저평가의 근본 원인인데 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사가 지배주주 일가뿐만 아니라 일반주주에 대해서도 충성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 필요성이 누차에 걸쳐 전달되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또한 지난 1월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법이 완비되어 있지 않더라도 판사들이 입법 취지에 따라 법을 적용한다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법원의 판결은 이와 거리가 멀었고, 최근에는 그 거리가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먼저 지난 1월 고등법원은 에스케이가 에스케이 실트론 잔여 지분 투자 기회를 최태원 회장에게 부당하게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에스케이가 사업 기회에 대한 처분권을 갖고 있지 않았고, 이 때문에 직접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처분권 있는 사업 기회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정위 심사 지침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소극적인 방법도 사업 기회의 제공으로 인정한다. 만약 이번 재판부의 자의적인 해석을 대법원이 그대로 인용한다면 사업 기회의 부당 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조문은 사문화될 것이다. 회사가 찾아낸 유망한 사업 기회를 총수 일가에게 양보해도 아직 처분권이 없었다면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 재원 부족과 집중투자에 따른 위험을 이유로 에스케이가 에스케이 실트론 지분 취득을 포기한 것이 합리적이었다는 재판부의 판단도 이해할 수 없다. 에스케이는 엘지로부터 실트론 지분 51%를 취득한 이후 추가로 19.6%를 총수익교환약정을 통해 인수했기 때문에 남은 29.4%도 얼마든지 총수익교환약정을 통해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총수익교환약정을 통해 인수하면 재원 마련의 부담이 없다. 고정 수수료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집중투자로 위험이 증가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에스케이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에스케이 실트론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잔여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고작 2%에서 3%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선고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1심 판결의 내용은 우리의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궤변들로 점철되어 있다. 합병의 목적과 경과를 허위로 설명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검사 쪽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그룹 지배권 강화만이 합병의 목적이 아니었고, 별도의 사업적 목적도 있었으며, 해당 목적에 대해서는 합병 과정에서 사실대로 설명했으므로 허위가 없다고 판시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삼성물산 상사 부문의 해외 유통망을 활용해서 제일모직의 패션 부문을 해외로 진출시키기 위해 미래전략실 관여 없이 자체적으로 합병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제일모직 패션 부문 사장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 합병 후 패션 부문의 예상 매출액 10조원에 대한 구체적인 산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연이 아니고서는 미래전략실이 두 회사의 합병을 계획한 시점과 패션 부문 사장이 합병 필요성을 제기한 시점이 정확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는 합병으로 인한 삼성물산의 그룹 지배력 강화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추상적인 이익일 뿐이고 불리한 합병 비율로 삼성물산 주주들이 입은 손해와 견줄 바가 아니다. 끝으로 재판부는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도 합리적인 합병 목적으로 인정했는데 이것과 검사 쪽이 제기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 강화 목적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한편 재판부는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도 부정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확정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업무상 배임죄 대법원 판결, 일성신약 주식매수 청구 가격 대법원 판결, 그리고 엘리엇의 투자자-국가 중재판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다행히 위 두 사건의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에스케이 실트론 사건은 대법원에서, 그리고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판결 내용을 바로잡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의 계기를 마련하는 명판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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