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의 다른 상상

한겨레 입력 2024. 3. 3. 18:30 수정 2024. 3. 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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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생활체육 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연일 찬바람에 사삭스럽게 여름을 그리는 날들이다. 그리는 여름에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날은 전남 담양군 ‘국수 거리’ 근처 골목을 지날 때였다. 마을과 관광지 경계에 있는 그 골목에서 그늘이 처진 평상에 할아버지 두 분이 지나는 사람을 가만히 구경하고 계셨다. 언제부터 나와계셨던 것일까 궁금해지며 이런 어르신들을 마주하는 일이 굉장히 일상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장소가 유동 인구인 관광객들에게는 재미와 휴식의 공간이지만, 정주민에게는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자투리땅 곳곳에 마련된 주차장에 편하게 주차하고 내리는 뒤로 정주민은 그늘 없는 인도에서 등을 땀으로 흠뻑 적신 채 느리게 걸었다.

작은 내륙 관광지 담양의 모습에서 전남의 고령 정주민을 떠올린다. 전남은 이미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1년 통계연보를 보면 담양은 총인구 4만7048명 중 65살 이상 고령자 수가 1만4662명으로 31%를 차지한다. 이 역시 높은 수치라 할 수 있지만, 전남 17개 군에서 12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고령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고흥군이다. 총인구 6만3711명 중 65살 이상은 2만6507명으로 무려 41.6%에 이른다. 다른 대부분의 군 역시 고령자 비율이 30% 이상이며, 영광, 화순, 무안 단 세 곳만 30%를 밑돈다.

그래서인지 전남은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정책, 특히 청년을 대상으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고문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정책을 발견했는데 고령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고흥군에선 ‘첫 주민등록증 발급 축하금 조례’ 제정을 앞두고 있다. 청소년에게 지역사회 공동체 일원이라는 자긍심과 소속감을 주는 것도 있지만 인구 문제 해결이 핵심으로 보인다. 또 고흥군 새마을금고는 ‘첫 주민등록증 발급 축하 적금’ 상품을 내놨다. 고흥군에 주소를 둔 17살 청소년이 대상이며, 매달 70만원까지 1년간 저축하면 7% 우대 금리를 적용한다. 청년을 붙잡아 두려는 고흥군의 노력이 돋보인다.

청년 정책을 통해 청년이 ‘잘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든다는 취지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 뒤에 관용구처럼 따라붙는 청년이 활동하는 ‘활기찬 지역’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거부감이 든다. ‘활력과 생기’를 청년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 같아서다.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고령자도 적지 않은데, 다만 이를 표현하고 표출할 기회와 장소가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군의 각 면 고령자가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물리적·심리적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디자인으로 설계된 운동장에서 보행 보조기를 동반한 빨리 걷기 시합을 하거나 깨 빨리 털기, 콩 빨리 골라내기, 예쁜 딸기 경연대회 등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달걀이라도 구워 동네 어르신들을 응원하러 갈 것이다. 이렇게 정주민, 고령자가 즐거워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지역은 소멸과 거리가 멀지 않을까.

‘고향’의 의미가 옅어지는 시대, 각각 분리된 공간이 아닌 연결된 망의 개념으로 지역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출 인구 대비 정책뿐만 아니라 정주민을 위한 정책과 시스템이 꾸준히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전남에서는 화순군을 시작으로 월세 1만 원의 청년주택 사업을 앞두고 있는데 고령 정주민을 위한 노후주택 개선사업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작년 장마철 오래된 주택 마당에 물 빠짐이 되지 않아 양수기로 물을 퍼내는 어르신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 지역에 애정을 가지고 삶을 꾸려나가는 정주민이 지방소멸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정주민과 소통하며 다른 시선과 상상으로 지역을 바라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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