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안 보이는 김건희
지난해 3·1절 기념식에서 김건희 여사는 단연 눈에 띄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참석자들까지 온통 검은색 차림인 행렬 앞줄에서 그는 홀로 하얀 옷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런 그가 올해 3·1절 기념식엔 불참했다. 대통령 부인의 국경일 행사 불참은 그 자체로도 드문 일이다. 지난 1월1일과 2월 설 명절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대통령 부부가 한복을 차려입고 국민에 인사하는 게 관례다.
김 여사가 안 보인다. 지난해 12월15일 네덜란드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3일까지 79일째다. 지난달 중순 대통령 부부의 독일·덴마크 순방이 돌연 취소된 것도 그의 언론 노출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만 않을 뿐 그의 영향력은 대통령과 버금간다는 느낌이다. 마치 블랙홀 부근의 시공간이 왜곡되는 것처럼, 입법·사법·행정부가 그 이름 석 자 앞에서 비틀리고 몸을 낮추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김건희 특검법’이 최종 부결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가결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했으나, 여당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영부인 방탄’이다. 그의 연루 의혹이 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항소심 재판은 총선 이후로 일정이 갑작스레 미뤄졌다. 검찰로서는 수사를 미룰 또 하나의 핑곗거리가 생겼다. 검찰은 김 여사 수사에 앞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항소심 재판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그의 이름 뒤에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SBS에 제재를 내렸다. ‘친윤’ 사장이 부임한 공영방송 KBS는 그가 받은 3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작은 파우치’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거에도 두문불출한 적이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허위 경력과 논문 표절 의혹이 일 때였다. 그는 2021년 12월26일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선거일까지 국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칩거가 길어지고 있다. 안 보이지만 그가 무섭다. 4월10일 총선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욕망을 누르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더 무서워진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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