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하얼빈 임시정부’, 정부 또 실수로 넘길 건가
3·1절 주관부처인 행정안전부가 ‘하얼빈 임시정부’로 표현한 3·1절 홍보물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초등학교부터 배우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같은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부터 오류를 범한 것은 상식 밖이고 충격적이다. 행안부는 ‘실수’라고 했지만, 국방부가 ‘독도 분쟁 지역’이라고 말해 소란이 일어난 게 얼마나 됐다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개탄스럽다.
행안부는 지난달 29일 3·1절 카드뉴스를 제작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행안부는 3·1운동을 “1919년 3월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한국·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소개했다. 3·1운동은 1919년 3월1일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으로 촉발됐고, 임정은 한 달여 뒤인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수립됐다. 정부가 공식 계정에서 역사적 사실의 본말을 완전히 전도했다. 임정 초대 대통령이 최근 여권에서 한창 띄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는 점과는 무관한 우연이길 바란다. 행안부는 “앞으로 실수가 없도록 주의 깊게 확인하겠다”고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실수도 반복되면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야권과 학계에서 “광복 이전 독립운동사를 폄훼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의도적 실수’”라고 비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얼빈 임시정부’ 오류는 지난해 12월 국방부의 ‘독도 분쟁 지역’ 언급 때 언론·시민사회가 제기한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한·일 협력 중시’ 기조로 변침한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시스템에서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 당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 했던 대통령실은 이번엔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근본적으로 북한을 ‘주적’ 삼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이런 오류·혼선의 원인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당장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과의 미래 협력을 강조할 뿐 과거사 책임은 묻지 않았다. 여권과 보수단체들은 <건국전쟁> 다큐에서 이승만을 과도하게 미화하고 ‘이승만기념관’을 추진하면서도 홍범도 장군 육사 흉상 이전 문제는 눈감고 있다. 정부·여당은 선 넘은 역사·이념 전쟁을 성찰하고, 오류를 문책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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