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다시 진상규명 숙제로 남은 ‘5·18 발포’ 명령자

한겨레 2024. 3.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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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3건의 직권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를 지난 1일 위원회 누리집에 공개했다.

지난 연말로 4년에 걸친 조사활동을 마무리하고, 그간 밝혀낸 내용을 전원위원회 속기록과 함께 공개한 것이다.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이전인 5월21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에서 일어난 발포는 당시 육군의 예규조차 위반한 무단 총기 사용으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위 역시 최종 발포 책임자를 가려내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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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3월16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왼쪽 셋째)이 자신의 총격으로 사망한 박병현씨 유가족에게 사죄하며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3건의 직권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를 지난 1일 위원회 누리집에 공개했다. 지난 연말로 4년에 걸친 조사활동을 마무리하고, 그간 밝혀낸 내용을 전원위원회 속기록과 함께 공개한 것이다. 모두 17건의 직권사건 중 나머지 4건도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조사를 통해 166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망자에 대한 국가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이들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와 인근 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이다. 5·18 진압 이후 전두환씨 등 신군부가 장악한 계엄사령부는 사망자 규모를 144명으로 줄여 발표했으나, 이후 국회 ‘광주’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거치며 166명으로 밝혀진 바 있다. 조사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 개개인의 사망 경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계엄군에 의해 광주 변전소·교도소 등 5곳에서 집단 학살이 이뤄진 사실도 공식 확인됐다. 행방불명자 규모도 기존 76명의 두배가 넘는 179명으로 늘었다. 상해·후유증, 상이 후 사망 등 부상자 규모 또한 2617명에 이른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국가 폭력이 자행됐다는 뜻이다.

총격에 의한 희생자가 유독 많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엄군의 총격은 최소 10곳 이상의 장소에서 이뤄졌고, 사망자의 80%가 넘는 135명이 총상으로 숨졌다. 전체 부상자의 13%에 해당하는 337명도 총상을 입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계엄군의 총기 사용이 매우 폭넓게 허용됐다는 뜻이다.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이전인 5월21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에서 일어난 발포는 당시 육군의 예규조차 위반한 무단 총기 사용으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지휘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군이, 그것도 민간인을 향해 멋대로 총을 쏠 수 있나. 상식적으로 최고위 발포 명령자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위 역시 최종 발포 책임자를 가려내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중요한 진상규명 과제가 미해결인 채로 남았다. 사망한 전씨가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정황과 진술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발포 지시 등 최종 책임을 물을 만한 확증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44년이란 세월이 흘러 전씨를 비롯한 핵심 당사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이 문제가 자칫 현대사의 영구 미제로 남게 될까 봐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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