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념적 통일 방안 아닌 평화적·단계적 통일 방안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제105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이 3·1운동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에 대한 응답이다. 정부가 통일을 계속 추구하겠다는 것은 좋게 평가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올바른지는 제쳐두더라도 윤 대통령의 통일론에 문제가 많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진보·보수 정권에 관계없이 이어온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접고, 이념적인 흡수통일로 향해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독립과 동시에 북녘땅 반쪽을 공산전체주의에 빼앗겼”다며 영토 수복 의지를 천명하고, “북한 정권의 폭정”으로부터 북 주민들을 구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거 보수 정권 때마다 나왔다 사라지길 반복한 북한붕괴론·통일대박론에 사로잡힌 것 아닌지 우려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존 통일 방안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며 수정·보완을 시사했다. 하지만 어떠한 정부도 통일 방안에 자유민주주의를 누락한 적이 없다.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1994년)에도 통일의 기본철학, 통일의 미래상으로 여러 차례 자유민주주의가 제시돼 있고, 앞선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1989년)과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1982년)도 마찬가지다.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수정·보완할 필요는 있다. 다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누락돼서가 아니라 지난 30년 사이 있었던 북한 핵무장 등 국내외 정세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이유가 크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앞선 3개 통일 방안에서 포기된 적 없는 평화적·단계적 통일 방법론을 유지하는 것이다. ‘평화정착-두 체제 공존-한 국가’로 상정한 통일 단계를 흔드는 것은 북한체제 붕괴만 기다리거나 전쟁을 불사하는 걸 의미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평화적·단계적 방법론을 지키면서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를 어떻게 병행해 나갈지 정교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라는 종착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뜻을 모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처럼 정부의 일방적 발표가 아니라 국가적 토론을 거쳐 마련해야 한다. 4월 총선 이후 여야 대화를 통해 정권교체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단단한 통일 방안을 만들기 바란다.
아울러 4일 시작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 정부의 안정적 상황 관리도 중요하다. 윤 대통령 이하 정부 당국자들은 긴장을 놓지 않되, 자극적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장기적 통일 방안 수립과 단기적 상황 관리는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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