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 매서운 '사무라이 랠리'···올리고, 버리니, 몰렸다
엔저·美기술주 상승 영향 크지만
수년간 자본효율 제고 등 노력에
이익 유지만 급급했던 기업 꿈틀
단기 아닌 장기 체질개선 큰효과
일본 닛케이평균(닛케이225)이 이달 1일 장중 3만 9990.23을 찍으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4만 엔 고지에 다가섰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일본 증시의 강세는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주의 실적 개선과 미국 인공지능(AI)발 기술주 랠리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이 같은 활황을 단순히 ‘엔저’ ‘미국 낙수 효과’로만 진단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수년에 걸친 기업들의 체질 개선으로 기존 ‘일본식 경영’에 변화가 나타나면서 해외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버블 붕괴 후 투자 없이 이익 유지에만 급급했던 기업들이 꿈틀대면서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자본효율·주주환원 ‘올리고’=3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준가순자산비율(PBR) 개선책을 내놓은 상장사는 전체 프라임 시장의 40%에 달한다. 거래소는 지난해 3월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PBR 1 미만 기업에 ‘주가 수준에 대한 분석’과 개선책을 요구했다. 올해부터는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 명단을 매월 공표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개선 방안인 ‘자본비용 및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현을 위한 대응’을 요구한 후 42.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225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지난해 초 대비 PBR이 높아진 기업은 80%가 넘는다.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힘’을 제고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확대하면서 PBR 개선과 투자 자금 유입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사상 최대인 9조 6000억 엔으로 3년 연속 증가하는 한편 2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액을 합한 금액은 28조 엔으로 상장사 총 순이익 대비 50% 이상이었다.
◇투자·개혁 없는 일본식 경영 ‘버리니’=일본을 30년 장기 침체에 빠뜨린 기업들의 소극적인 투자·개혁 마인드가 변화한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일본 기업들은 오랜 시간 ‘끓는 냄비 속에서 서서히 익어 죽어가는 개구리’, 일명 ‘유데가에루(ゆでガエル)’에 비유됐다. 임금이나 설비투자·연구개발비를 억제해 이익을 확보하는 ‘냉온(冷溫) 경제’는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 및 임금 인상으로 ‘골디락스’에 해당하는 ‘적온(適溫) 경제’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기업 단기 경제 관측 조사’를 보면 지난해 12월 조사 시점의 기업 설비투자 계획은 전년 대비 12.6% 늘어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물론 노동력 부족과 해외 변수로 공장 건설 등 투자 완결이 지연되고 있지만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는 크게 개선된 것이 확인된다. 내각부는 올 1월 관련 보고서에서 “기업의 투자 의욕이 강하고 이들의 실적이 사상 최고를 경신해 (설비투자를 둘러싼) 환경은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과감한 구조조정도 한몫했다. 일본 제조 업계에서 ‘개혁의 대명사’로 꼽히는 히타치의 경우 문어발식 경영에 2008년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 적자(7880억 엔)를 냈다. 이후 이 기업은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다른 사업은 매각해 20개 이상의 자회사를 정리했다. 과감한 매각의 한편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강화를 위해 관련 해외 사업을 인수했고 사업 효율화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최근 외식 업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엔을 돌파한 업체 젠쇼홀딩스 역시 식재료 조달, 제조, 물류에 이르는 공정을 시스템화해 비용을 억제하는 독자적인 구조를 구축하는 한편 국내 인구 감소에 대응해 해외에서 인수합병(M&A)을 강화했다.
이 외에도 금융 당국이 손해보험사들의 ‘정책보유주’ 정리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증시 밸류업’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책보유주는 순수 투자가 아닌 거래처와의 관계 구축을 위해 보유하는 주식이다. 정책보유주를 매각해 여유 자금이 생기면 배당 등 주주 환원에 활용하는 한편 ROE가 상승할 수 있다.
◇“매력적” 외국인 투자 ‘몰렸다’=이 같은 변화는 외국인투자가의 유입으로 이어졌다. 일본거래소그룹이 발표한 투자 부문별 매매 동향(현물주)을 보면 해외 자금은 2월 16일까지 7주 연속 매수를 기록했다. 2월 셋째 주(2월 19~22일)는 매도 우위를 보였지만 매수 우위가 2조 7000억 엔으로 큰 흐름(매수)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분석이다. 미 자산운용사 퍼스트이글인베스트먼트의 매튜 램피어 포트폴리오매니저는 “기록적인 이익, 배당, 자사주 매입, 여기에 여전히 양호한 밸류에이션 수준이 결합해 일본주에는 많은 플러스 재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2월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중 일본주를 선호한다’는 투자자는 56%에 달했다.
◇수출·반도체서 내수까지 ‘온기 확산’=전문가들은 당분간 일본 증시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대형 수출·반도체주, 일명 ‘사무라이 7’에서 시작된 변화와 주가 강세의 기운이 내수주·중소형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주 대비 엔저 수혜가 덜했던 내수주는 최근 실적 개선과 임금 인상, 인바운드 여행객 증가 등에 힘입어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부상 중이다. 대부분의 금융사가 닛케이지수 목표를 4만 5000엔 전후로 제시한 가운데 미쓰이스미토모DS에셋매니지먼트는 10~12월께 4만 8600엔을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에 미중 경제의 향방, BOJ의 금융정책 전환, 11월 미국 대선 결과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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