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대신 ‘죽음’ 불러온 구호 현장···가자 ‘구호트럭 참사’에 휴전 요구 빗발
‘생존’에 대한 절박한 요구가 ‘죽음’이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구호트럭에 몰려든 주민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하며 수백여명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미국조차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2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을 통해 “현재 (휴전) 협상안이 테이블에 올라와 있으며 이스라엘은 거의 수용했다”면서 “이제 공은 하마스에게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만약 하마스가 취약한 인질들의 석방을 수용한다면 가자지구에선 오늘부터 당장 6주간 휴전이 이뤄질 것”이라며 덧붙였다.
이 발표는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개전 이후 처음으로 “즉시 휴전(immediate ceasefire)”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뒤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가자지구의) 무고한 시민들이 참혹한 전쟁으로 가족들을 먹이지조차 못하고 있으며, 그들이 도움을 받으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 모두 보았을 것”이라며 인질 석방과 즉시 휴전, 가자지구 구호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굶주린 주민들에 무차별 발포했나…“희생자 80% 총상”
앞서 지난달 29일 새벽 가자지구 북부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구호트럭에 몰려든 민간인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최소 118명이 숨지고 76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군은 혼란을 막기 위해 ‘경고 사격’을 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았고, 사망자 대다수가 트럭에 치이거나 압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상자 대다수가 총상을 입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며 이스라엘군이 굶주린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 알아우다 병원의 모하메드 살하 병원장은 이 병원으로 이송된 176명 중 80%에 해당하는 142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북부 알시파 병원에 대표단을 급파한 유엔 역시 희생자 상당수가 총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날 참사로 인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3만명을 넘어섰다.
유엔과 유럽연합(EU), 프랑스, 영국 등은 이스라엘군의 발포를 일제히 비판하며 이번 참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면서도 이스라엘의 자체 조사를 신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전쟁이 시작된 후 단일 사건으로 최다 사망자가 발생한 이번 참사에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5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봉쇄로 가자지구의 식량난이 이미 임계치에 이르렀고, 이스라엘군의 구호 방해도 계속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막을 방법이 휴전 외엔 없다는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7만6000명이 기근 상황에 놓여 있다.
참사 발생 후 미국은 항공기를 이용해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공중 투하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방식이 ‘보여주기식’ 지원에 불과하며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구호단체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육로보다 효과도 적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이런 ‘우회로’를 택한 것 자체가 구호품 전달을 방해하지 말라는 미국의 압력조차 이스라엘에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란 평가도 나온다.
거세지는 휴전 요구…라마단 전 휴전 성사될까
이번 참사가 휴전 협상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현재 물밑 협상은 중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휴전 협상을 중재해온 미국과 이집트, 카타르 등은 오는 10일쯤 시작되는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 기간 전에 휴전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재국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휴전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3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재차 모였다. 하마스 측도 이날 협상을 위해 카이로에 도착했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2인자 칼릴 알하이야가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대표단도 카이로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마스 고위 관리는 AFP통신에 “이스라엘군이 (남부로 피란을 온)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의 북부 귀환과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 등 우리의 요구에 동의한다면 향후 24~48시간 내에 합의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휴전안은 양측이 6주간 휴전하고 이스라엘 인질 1명당 팔레스타인 수감자 10명을 맞교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종전 연계 논의와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 병력 철수와 관련한 입장 차는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휴전이 라마단 전에 성사될지는 여전히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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