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도 옮아... 학폭과 시원하게 맞서는 김지연에 남는 불안감('피라미드 게임')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3. 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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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게임’, 김지연이 싸우는 괴물과 점점 닮아간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이 게임은 절대 너 하나 없어진다고 끝나지 않아. 지금 같은 시스템 유지하는 거 백하린 혼자가 아니야. 나머지도 결국 똑같아. 괴물도 옮아."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명자은(류다인)이 자퇴를 할 거라며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말하자 성수지(김지연)는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 단언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이미 폭력의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 피해자 한 명이 사라지면 또 다른 피해자로 옮겨갈 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이 학교에서 이미 벌어졌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조우리(주보영)가 학교를 그만두고 방으로 칩거해버렸지만, 그 후에도 명자은에 이어 성수지 그리고 표지애(김세희)로 계속 피해자들이 옮겨가고 있을 뿐 그 폭력의 시스템은 공고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인기투표로 이뤄지는 게임을 통해 A등급부터 F등급까지 나누고, 한 표도 받지 못한 F등급은 공식적인 왕따가 되는 이 시스템을 처음 접한 전학생 성수지는 '기괴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시청자들의 생각 그대로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 비현실적인 시스템이 그럴 듯하게 그려지는 건, 이를 용인하는 많은 것들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제대로 된 선생님이 없다. 2학년 5반 담임은 오로지 돈에만 미친 인물로 피해학생을 구제하기는커녕 그걸 약점 삼아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교사들을 통제해야할 교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학교는 사실상 백연그룹 후계자이자 백연여고 이사장 딸인 백하린(장다아)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백하린은 그래서 이 피라미드 게임의 꼭짓점 위에 올라 모든 권력을 휘두르고, 이 사이코패스 같은 괴물은 또 다른 괴물들을 줄줄이 낳는다. 성수지의 말대로 선생님도 학생들도 그 괴물이 옮는다.

<피라미드 게임>은 그래서 다소 과장되게 극화한 것이지만 학교폭력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근절되지 않는 우리네 현실의 시스템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학교에서의 피라미드 구조로 서열화된 시스템의 이면에 그들의 부모들 역시 피라미드 구조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의 서열에 따라 아이들의 서열이 나뉘는 현실의 부조리를 드라마 속에 재연해낸다.

어찌 보면 고구마 가득한 이 피라미드 게임에 종속된 상황이지만, 드라마는 이 판을 뒤집으려는 당찬 소녀 성수지의 만만찮은 저항과 도전을 그려냄으로써 이를 시원한 사이다에 대한 기대로 바꿔 놓는다. 그 피라미드 구조를 깨기 위해 중간 계급을 모아 연합하고 이를 투표로 가져와 마름모 모양을 구현해내려 하고, F등급에 반에서 인기가 좋은 아이돌 연습생 임예림(강나언)을 세움으로써 아이들이 공격할 수 없게 만드는 식으로 시스템을 뒤흔들려 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백하린이 만들어놓은 피라미드 시스템에 대항하는 성수지 연합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무력하게만 보였던 피해자들인 명자은이나 표지애가 성수지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하나하나 자기 편을 포섭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들의 반격을 기대하게 만든다. 여기에 왕따 피해로 히키코모리가 된 조우리의 오빠인 해커 조승화(조동인)가 연합하면서 이들은 반 아이들의 갖가지 정보들을 무기로 갖게 된다.

성수지의 반격이 기대되지만, 동시에 그 역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은 "괴물도 옮아"라고 그가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반격을 하기 위해 정보를 캐내고 그걸로 상대를 협박해 포섭하는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백하린이 아이들을 장악한 방법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점 성수지가 백하린을 닮아간다고 느낀다. 과연 성수지는 이 학교폭력이라는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폭력을 당하면 으레 의기소침해지고 무력해지는 피해자들과 달리, 성수지가 당하면서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당차게 싸워나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시원한 지점이지만, 그 당찬 모습이 어느 순간 가해자들의 모습과 점점 비슷해져가는 건 어딘가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피라미드 게임>은 이 폭력의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이 해결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런 시스템을 용인한 어른들이 나서서 바꿔나가야 비로소 어떤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향후 어떤 전개를 통해 드라마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못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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