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대표 빅맨에서 대체 전문으로 2010년대 누빈 허버트 힐

이재승 2024. 3. 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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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허버트 힐은 2010년대 프로농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외국 선수다. 비록 레전드급 외국 선수들만큼 업적을 쌓지는 못했으나, 10년 동안 무려 7팀에서 활약했다. 그만큼 많은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대학 시절
힐은 NCAA 프로비던스 프라이어스에서 네 시즌을 보냈다. 대학 시절의 힐은 단연 돋보였다. NBA에서 활약했던 에릭 머독과 라이언 곰즈에 이어, 누적 득점 3위. 그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했다.
 

해마다 발전한 힐은 2년 차인 2004~2005시즌부터 팀에 필요한 전력으로 거듭났다. 30경기에서 평균 14.7분 동안 4.8점(필드골 성공률 : 약 57.6%, 자유투 성공률 : 약 37.5%) 3.4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만, 늘어난 기회에 대비해, 자유투 성공률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이내 나아졌다. 2005~2006시즌에는 경기당 18.4분 동안 9점(필드골 성공률 : 약 58.6%, 자유투 성공률 : 약 55.7%) 4.8리바운드를 책임졌다.
 

조금씩 발전한 힐은 4학년 때 만개했다. 2006~2007시즌에 특히 돋보였다. 31경기 평균 31.9분을 소화했고, 경기당 18.1점(필드골 성공률 : 약 64.0%, 자유투 성공률 : 약 60.2%) 8.8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평균 득점이 약 2배 상승했다. 공격 성공률도 좋았다.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평균 필드골 성공률과 자유투 성공률 60%를 넘겼다.
 

힐은 돋보이는 활약을 했으나, 힐의 소속 학교는 NCAA 전미 토너먼트에 나서지 못했다. 팀의 전력이 크게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즉, 전력이 도드라지지 않았기에, 힐은 높은 곳을 두드지 못했다. 힐을 알릴 기회도 당연히 줄었다.
 

하지만 힐은 2007년 여름에 NBA에 도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급 선수들이 대학 생활 1년 후에 NBA로 뛰어드는 반면, 힐은 이들과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은 2라운드에서 뽑혔다. 유타 재즈가 2라운드 25순위로 힐을 호명한 것.
 

그러나 힐은 지명 직후 트레이드가 됐다. 트레이드된 힐은 끝내 NBA 코트를 밟지 못했다. 또, 프리 시즌 도중 무릎을 다쳤다. 빅리그 진입의 기회가 날아갔다. 이후 D-리그(현 G-리그)에서 두 시즌을 보내야 했다.

대구를 시작으로
D리그에서 두 시즌을 보낸 그는 빅 리그 진입을 노렸다. 그러나 기회가 이어지지 않았다. 힐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9년 여름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던 이유.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가 전체 4순위로 힐을 불러들였다. 힐을 얻은 오리온스는 페인트 존 전력에 관한 고민을 내려놓았다. 힐이 안쪽에서 제 몫을 해냈기 때문. 오리온스는 힐의 가세로 반등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김승현이 부상으로 25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로 인해, 오리온스는 온전한 전력으로 나서지 못했다. 다만, 힐은 2009~2010시즌 54경기 모두 나섰다. 경기당 19.1점 9.5리바운드 2.2블록슛을 남겼다. 오리온스는 힐의 존재로 선전했지만, 시즌 종료 후 힐과 함께 하지 않기로 했다.

인천에서
비록 재계약을 맺지 못했으나,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 국내 무대에서 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2010년 여름 드래프트에 다시 나선 힐은 전체 4순위로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부름을 받았다.
 

힐의 전자랜드 합류는 많은 기대를 모았다. 서장훈을 보유한 전자랜드는 2010년 여름에 열린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문태종을 지명했기 때문. 
 

전자랜드는 2010~2011시즌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다. 힐은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정규리그 전 경기에 나섰고, 평균 17점 9.1리바운드 2.1블록슛을 기록했다. 서장훈과 문태종이 포진했음에도, 힐은 변치 않는 생산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생애 첫 외국 선수 MVP를 수상했다.
 

한편, 전자랜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2위로 정규리그를 마친 전자랜드는 우승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전주 KCC(현 부산 KCC)에 무릎을 꿇었다. 하승진을 포함한 KCC 주축 전력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
 

전자랜드는 2010~2011시즌 종료 후 힐과 한 시즌 더 함께 하려고 했다. KBL이 2010~2011시즌 종료 후 외국 선수 규정을 변경(‘1인 보유-1인 출전’과 ‘자유계약’이 골자였다)했음에도, 전자랜드는 새로운 선수가 아닌 힐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힐이 다른 곳에서 뛰길 바랐다. 그러면서 전자랜드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결국 변화를 추진했다. 서장훈을 창원 LG로 트레이드한 것. 또, 새로운 외국 선수로 잭슨 브로만을 낙점했다. 그러나 브로만이 주어진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전자랜드는 결국 시즌 중에 브로만을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힐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돌아온 힐은 활약했다. 그러나 전자랜드의 전반적인 전력이 이전 시즌만 못했다. 전자랜드는 2011~2012시즌 정규리그 6위에 그쳤다.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첫 관문에서 부산 KT(현 수원 KT)를 만난 전자랜드는 문태종과 힐을 내세웠다. 그러나 5차전에서 경기를 내줬다. 이번에는 4강 플레이오프에도 가지 못했다.

원주와 서울
힐은 2013년에 열린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나섰다. 원주 동부(현 원주 DB)에서 뛰게 됐다. 동부는 힐을 1옵션 외국 선수로 선택했다.
 

그러나 힐은 기복을 보였다. 또, 팀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중에 부상을 당했다. 8주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동부는 새로운 외국 선수를 물색해야 했다.
 

그러던 도중, 힐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다. 제스퍼 존슨으로 외국 선수 진영을 꾸렸다. 그러나 전성기와 멀어진 힐과 느려진 존슨은 다른 구단의 외국 선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안쪽에서 힘을 내야 하는 힐은 삼성에서 평균 10.1점. 아쉬움을 남겼다.

인천 그리고 전주
힐은 2014~2015시즌에 KBL에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15~2016시즌 초에 전자랜드의 호출을 받았다. 전자랜드의 주축 외국 선수인 안드레 스미스가 무릎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
 

만 4년 만에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게 됐다.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팀이자, 고향과 같은 곳에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힐이 분전했음에도, 전자랜드는 좀처럼 웃지 못했다. 힐이 들어온 이후, 전자랜드는 15경기에서 3승만 기록했다.
 

그리고 힐은 또 한 번 트레이드됐다. 안드레 에밋을 보유한 KCC가 빅맨을 필요로 했고, 전자랜드는 팀의 심장과 같았던 리카르도 포웰을 원했기 때문.
 

힐을 더한 KCC는 상승 기류에 몸을 실었다. 하승진이 있었기에, 힐과 하승진 모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기존의 안드레 에밋-전태풍-김태술 등이 전력을 배가했다.
 

힐은 KBL 입성 후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KCC는 고양 오리온(현 고양 소노)을 따돌리지 못했다. 시리즈 전적 2승 4패. KCC와 힐 모두 대권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마지막 여정
힐은 2015~2016시즌 종료 후 프로농구에서 뛸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016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얻은 KT가 교체 선수로 힐을 신청했다. KT가 선택했던 다니엘스는 지명 직후 부상으로 뛰지 못했기 때문. 그래서 힐은 시즌 초반에 일시 대체 선수로 3주 동안 KT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힐은 시즌 중에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요청을 받았다. 당시 찰스 로드를 시즌 중에 전격 방출했던 모비스는 에릭 와이즈를 데려왔다. 하지만 모비스의 외국 선수 모두 단신 선수였다. 그래서 모비스는 와이즈를 내보냈다. 그리고 힐을 영입했다. 그러나 힐은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다. KT와 모비스에서 총 9경기를 뛴 것이 전부였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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