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저성장은 50년간 딱 세번…지난해가 그랬다

한겨레 입력 2024. 3. 3. 09:05 수정 2024. 3. 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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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ㅣ보이지 않는 발
1분위 가구소득 1400만원…그중 국가 지원 611만원
민간소비 1.8% 성장 때 정부지출 1.3%…소극 플레이
지난해 11월 한 시민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누가 부자가 되고 누가 가난한 사람이 될까? 고전 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정한다고 한다. 더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남들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으면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재능과 ‘노오오력’을 통해 생산성을 증대시키면 나는 부자가 된다. 시장의 비효율을 효율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가 부자가 된다니!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 신통방통하다.

그런데 가계와 기업으로만 이루어진 민간경제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민간경제와 정부가 많은 돈을 주고받는 공공경제 안에서 살고 있다. 세금과 국가 예산을 통해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주고받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중앙정부 총지출 규모는 657조원이다. 지방정부·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일반 정부지출 규모는 무려 900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38%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런 규모의 정부지출을 빼고 누가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되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900조원에 이르는 재화와 서비스를 많이 누리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러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이 되는 측면도 크다. 정치력 또는 로비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발’을 통해 누군가는 부지런히 900조원을 가져간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시장소득이 아니라 가처분 소득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나라에서 연봉 2억원을 벌었다고 하자. 부러운가? 그런데 그 나라에서 세금을 1억5천만원 냈다. 가처분 소득이 5천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연봉 1천만원만 벌었다. 그런데 연금 등 복지로 4천만원을 받았다. 그럼 가처분 소득은 5천만원이다. 시장소득은 2억원과 1천만원으로 천당과 지옥의 차이지만, 가처분 소득은 같다. 실제 내 삶의 질은 시장소득이 아니라 가처분 소득이 좌우한다.

1분위 소득의 절반 가까이 ‘정부 지원’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소득은 6800만원(1인가구의 평균소득은 3천만원)이다. 그런데 가구소득 6800만원 중에서 공적 이전소득은 625만원이다. 공적 이전소득은 국가가 주는 돈을 의미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고용보험 급여 등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평균 가구는 매년 600만원이 넘는 돈을 국가에서 받고 있다. 즉, ‘보이지 않는 발’이 우리나라 가구소득의 600만원 이상을 좌우한다.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전체 소득은 1400만원이다. 이 중 국가가 주는 공적 이전소득은 611만원이니, 소득 1분위 소득의 절반 가까이는 ‘보이지 않는 발’ 덕이다.

특히, 공적 이전소득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제외돼 있다. 삼성전자에 수조원의 세제 혜택을 제공해도, 12년 동안 초중고를 무료로 다니면서 밥까지 무상으로 먹어도, 임대주택에서 싸게 살아도 공적 이전소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돈으로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발’보다 서비스로 제공하는 ‘더 보이지 않는 발’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국가지출 규모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평균 경제성장률(1.7%)보다 낮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낮은 경제성장률에 책임을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선진국 중에서는 상당히 높게 성장했다”고 답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미국과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이 2.4%였고 오스트레일리아가 1.9%를 기록했다. 일본도 1.7%였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아진 건 최근 50년 동안 단 세번밖에 없는 일이다. 쿠데타 직후인 1980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그리고 2023년이다. 정권이나 경제 권력을 잃지 않고도 일본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일이 처음 발생했지만 한 총리는 국회에서 거짓말을 했다. 이를 지적하는 야당 의원도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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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디피의 38%’ 저조한 정부지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왜 이렇게 낮을까?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작년 정부지출은 불과 1.3% 증가했다.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00년에 정부지출 증가율(0.7%)이 낮았던 이유는 당시 민간소비가 무려 9.3%나 증가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민간소비가 늘면 정부지출을 줄이고 민간소비가 줄면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이 재정 운용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8%에 불과했다. 정부지출 증가율은 더 크게 줄여서 내수를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낮췄다.

근본적으로 국가는 플레이어라기보다 심판이다. 즉, ‘골 넣는 심판’이다. 국가는 공정한 심판도 아니고 공정한 심판이어서도 안 된다. 국가는 재원을 그냥 엔(n)분의 1로 나누어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과 선택에 따라 재원을 불균등하게 분배한다. 불균등하게 재원을 분배하는 ‘골 넣는 심판’이 누구 골대에 골을 넣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상당 부분 좌우된다. 시장이라는 축구 경기에서 ‘골 넣는 심판’이 상대편 골대에 골을 넣으면 내가 이길 수 있다. ‘골 넣는 심판’의 의지에 따라 내가 부자가 되거나 가난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나라 가구는 평균적으로 600만원 이상 국가로부터 현금을 지원받고 있다. 만약 우리 가구가 지난해 6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면 예산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는 현금 지급뿐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 규모가 더 크다. 셋째, 국가의 지출 규모 자체가 내수경제에 차지하는 효과가 대단히 크다. 국가가 특별히 예산 혜택을 주지 않아도 구매 주체로서 해야 할 역할도 경제성장률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넷째, 시장의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규제와 정책을 통해 시장을 규율하는 심판 역할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의 지출액과 정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발’은 도대체 누구일까? 재정학 교과서에는 철의 삼각형이 국가의 재원 배분을 결정한다고 한다. 철의 삼각형은 관료·정치인·이익집단이다. 김인국 신부님은 ‘정(政)·재(財)·관(官)·학(學)·언(言) 오각동맹’을 언급했다. “오각동맹은 그 어떤 충격에도 꿈쩍하지 않는 철옹성이었던 반면 연민을 기초로 뭉치는 못난이들의 연대는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 가냘팠다”고 한탄했다.

우리나라 정부지출 규모(국내총생산의 38%)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큰 일본과 미국의 정부지출 규모는 약 45%다. 독일은 51%, 프랑스는 무려 59%다. 국내총생산의 약 50% 안팎을 정부가 지출하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지금도 정부 역할은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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