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연구실 ‘외계인’ 납치됐나…전례 없던 맹추격 나선 미국 심상치 않네 [위클리반도체]

오찬종 기자(ocj2123@mk.co.kr) 2024. 3.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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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종 기자의 ‘위클리반도체’-3월 첫번째 주 이야기

삼성전자가 공개한 가상 외계인 연구원 캐릭터 지누스마스 모습. 사진=삼성전자
“삼성은 이미 다음 세대 제품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이 말은 2020년대 초반만 해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압도적인 점유율로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이 본인의 페이스로 시장을 끌고 나간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24단 낸드플래시를 세상에 처음 내놓고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등 경쟁자들이 이를 따라오면 기다렸다는 듯 미리 개발해둔 다음 세대(32단)를 양산하며 거리를 유지하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삼성 연구실에는 ‘외계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부러움 섞인 농담이 경쟁사들로부터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성이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강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이유도 든든한 버팀목인 메모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최근 3개월 주가 추이. 사진=네이버 증권
“어느 날 손을 넣어보니 주머니가 텅 비었다.”
최근 삼성의 고위 관계자가 위기감을 토로하며 한 말입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부가 요즘 들어 전례 없는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습니다. 지난 연말 업황개선이 시작된 이후 순항 중인 다른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과 달리 삼성전자의 주가가 부진한 것도 이 이유가 크죠.

특히 HBM 시장 패권을 두고 SK하이닉스에 초반 기세를 내준 데 이어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미국의 마이크론마저 절대 고객 ‘엔비디아’를 뚫어내며 일격을 가했습니다. 최신 5세대 제품인 ‘HBM3E’를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치열한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마이크론 “엔비디아에 공급”…‘팀 USA’ 메모리 판 흔든다
마이크론의 HBM3E. 사진=마이크론테크놀로지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에 들어갈 HBM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고 26일(현지시간) 밝혔습니다. 마이크론이 양산을 시작한 제품은 D램을 8단으로 쌓은 24GB HBM3E 제품입니다.

지난해 말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가 소비전력이 30% 적고 성능이 10% 뛰어난 HBM3E를 납품하겠다고 밝혔을 때 반도체 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론의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매우 근접했다는 것이 이번 발표에서 명확하게 확인됐죠.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 사진=마이크론
이 제품은 엔비디아가 오는 2분기 출하를 시작하는 H200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사용될 것이라는 게 메로트라 대표의 설명입니다. H200은 현재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인 H100을 대체할 새로운 칩이죠. 마이크론은 이날 자사 HBM3E의 전력 소비가 경쟁사 제품보다 30% 적다는 점을 강조하며 본인들의 공약이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마이크론의 HBM3E 양산 시점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앞선 것입니다. SK하이닉스는 오는 3월 HBM3E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고, 삼성전자는 HBM3E 8단 제품과 12단 제품 모두 올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의 발표 가운데 양산과 출하 시점에 대한 표현이 모호하다는 점을 들며 기술적인 검증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아직 존재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론의 기술 추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특히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자국 기업 선호 분위기가 높아 마이크론의 존재감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시각에 이날 마이크론 주가는 전일 대비 4.02% 상승했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는 하락했죠.

즉각 대응사격 나선 삼성 “4층 더 높게 쌓은 12단 제품 개발”
삼성전자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위기감을 느낀 삼성은 즉각 다음 세대 기술 공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이 양산 계획을 밝힌 8단 HBM3E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12단 HBM3E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며 맞불을 놨습니다.

12단 제품은 초당 최대 1280GB(기가바이트)의 대역폭과 현존 최대 용량인 36GB를 제공합니다.

전작인 HBM3(4세대 HBM) 8H(8단 적층) 대비 50% 이상 개선된 제품입니다. 예를 들어 서버 시스템에 HBM3E 12H를 적용하면 HBM3 8H를 탑재할 때보다 평균 34% AI 학습 훈련 속도 향상이 가능하며, 추론의 경우에는 최대 11.5배 많은 AI 사용자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게 삼성의 설명입니다.

마이크론은 이르면 다음 달 해당 12단 제품 개발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성전자는 HBM3E 12H의 샘플을 고객사에게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상반기 양산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HBM 공급 역량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대비 올해 2.5배 이상 생산능력(캐파)을 확보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결국 분수령은 ‘수율’…결과에 따라 ‘춘추전국시대’ 열릴수도
AI 시대를 맞아 저장·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HBM은 엔비디아나 AMD의 AI 반도체 구동을 위한 필수재가 됐습니다.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2022년 11억 달러에서 2027년 51억77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마이크론 모두 ‘찍어내는 즉시 완판’이라는 상황이죠.

업계에서는 1~3달의 속도 차이가 있지만 기술 개발 수준은 사실상 비슷한 선상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불량 없이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찍어낼 수 있을지 ‘수율’에 달려 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오랜 개발 업력을 바탕으로 수율 우위를 가져간다만 마이크론의 돌풍은 찻잔 속에 태풍으로 그칠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들의 자신감대로 마이크론이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잡은 것을 넘어 수율에서마저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면 메모리 반도체 삼국지의 지도는 춘추전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기업들부터 TSMC와 인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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