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59] 어떤 사정(射精)은 만물을 창조합니다. 고대문명에서 ‘정액’은 만물의 근원이자 신성한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동서를 가리지 않고 정액은 추앙받곤 했지요.
수메르 문명의 탄생신화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물의 신 ‘엔키’가 자위행위를 시작했다. 흥분이 절정에 달했을 때 우윳빛 액체가 메마른 땅에 떨어졌다. 갈라 비틀어진 땅이 비옥한 두 갈래 강이 되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었다. 이곳은 강의 중간이란 의미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부른다.”
이라크 디카르주에 있는 고대 수메르 문명 유적지인 우르의 지구라트. 수메르 문명에서는 엔키신의 정액에 의해 인간이 창조됐다고 여겨진다. [사진출처=Hardnfast]
고대 문명의 정액 숭배
고대 이집트문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창조신 아툼이 자위를 하자 공기의 신인 슈와 비의 신 테프누트가 탄생하지요.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대지는 생명체로 가득 채워집니다. 창조신의 정액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는 웅장한 ‘세계관’이었지요.
파피루스에 묘사된 창조신 아툼(가운데). [사진출처=rowanwindwhistler]
철학의 나라 고대 그리스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액은 귀한 대접을 받았지요. 남성을 남자답게 만드는 ‘물질’로 여겨서였습니다(고대 그리스는 여성혐오 국가였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오직 남성만이 피를 정액으로 만드는 열을 가지고 있다. 신체가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완벽한 영양분인 정액을 몸에 지닌 것이 좋다.”
사춘기 소년들에게 자위하지 말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들은 “정액은 뇌의 한 방울”이라고까지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테스, 아니 라톤형, 정액은 방출하면 몸에 안좋다니까요.” 1509년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가 플라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정액을 배출하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후대인 고대 로마의 철학자 갈레노스는 한발짝 더 나아가 ‘사체액설’을 주창합니다. 인간의 몸이 흑담, 황담, 혈액, 점액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요지.
갈레노스에 따르면 정액은 고환에 들어간 체액이 열로 인해 하얗게 변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혼합물이기에 그대로 품고 있는 게 좋다고 여겼지요. “과도한 성행위는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청소년들은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비비 꼬았을 테지요.
1세기 의사 소라누스가 그린 자궁에서 태아의 위치. 그는 인간의 몸에 대한 독특한 식견을 여럿 남겼다.
‘정액’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처방전’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치료법’을 낳았습니다. 고대 로마인 의사인 소라누스는 ‘사타구니에 납판을 넣고 차가운 주스로 고환을 식힐 것’을 권했습니다. 몸의 욕구가 식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마시는 사람들까지 등장
성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지만, 초반부터 모든 신도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4세기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인 보르보라이트 신자들은 정액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경전’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그들이 믿는 경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와 산에 올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사정한 후 예수께서 막달라에게 정액을 먹으라 일렀지요. 이렇게 말하면서요. “이것이 당신이 살아가야 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경전을 문자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실천할 정도로 열렬히요(비극의 시작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난교했고, 서로의 정액을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이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지요. 보르보라이트교의 이야기는 당대 기독교의 성인인 에피파니우스에 의해 전해집니다.
“저런 괴상망측한 짓거리를 어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에피파니우스는 이단의 행동에 대한 기록들을 여러 남긴 성인이다.
그는 기독교를 괴이쩍은 방식으로 믿는 사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저자입니다. 일각에서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세우기 위해 나머지 종파의 견해를 극단적으로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몽정도 불결의 대상으로 여긴 중세 기독교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한 이후, 정액은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될 물질로 여겨집니다. 성교없는 사정을 무엇보다 큰 죄악으로 여겼을 정도였지요. 자위는 물론이고, 몽정까지 규제한 배경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은 밤이 무서웠을 것입니다. 잠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잠재적 본능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지요.
욕망은 그의 신체를 빳빳이 세우고 기어이 침대를 적시고 맙니다. 아침마다 수도승들은 좌절의 눈빛으로 신을 찾았지요. “저의 죄를 사하소서.”
“밤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 에곤쉴레의 자화상(1901년).
그리고 그들은 금식과 고행으로 다시 몽정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빌었습니다. 성경에도 사정에 대한 기록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사정을 한 남자는 몸 전체를 깨끗한 물로 저녁까지 씻어야 한다.” -레위기-
기독교의 성인들은 이를 근거삼아 ‘사정의 자제’를 촉구합니다. 물론 이따금 도덕적 밸브를 조금 느슨하게 풀기도 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육체와 의지 사이엔 큰 간격이 있다”는 말로 수도승들을 위로합니다. 일부러 몽정한 건 아니니 용서해주자는 취지였지요. 5세기 후반의 또 다른 교부도 “성적인 꿈을 꾸지 않고 몽정을 3번만 한 이는 훌륭한 종교인이 될 조건을 갖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악마의 장난으로 여겨진 몽정
그런데도 몽정하지 말라는 교부들의 채근은 계속됩니다. 5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인 디오스코로스는 “금식하면 몽정이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도한 영양 섭취는 체액의 축적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 주장이었지요. 기독교에서는 식욕이 성욕과 연결된다고 여겨왔습니다.
존 콜리어가 그린 ‘릴리스’. 릴리스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으로 후에 남자의 정액을 먹고사는 서큐버스라는 악마가 되는 인물이다.
중세 유럽에서도 몽정에 대한 악마화는 끊임이 없었습니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 악마인 서큐버스를 아시는지요. 당시 유럽에서 서큐버스는 ‘정액을 먹고 사는 악마’였습니다. 밤마다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정액을 빼앗아 먹으면서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존재. 그만큼 사람들이 몽정을 불안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었지요.
오귀스트 로뎅의 ‘서큐버스’.
영국 빅토리아 시기에도 ‘사정’은 환영받지 못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이 태동한 때였지만, 이성과 과학이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시절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에도 자위와 몽정에 대해서만큼은 중세 교부의 생각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의사들은 “잦은 성관계는 질병의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성관계는 최대한 지양하고, 되도록 금욕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지요. 중세 수도승들이 신도들에게 강조했던 것처럼요. 일부 의사들은 욕정을 호소하는 남성들에게 ‘정자링‘을 처방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발기할 경우 성기를 조르는 물건이었습니다(왠지 모르게 사타구니에 통증이 느껴집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군사적, 산업적으로 영광이 꽃 피운 시기이지만, 정반대로 성 도덕에 대한 규율도 높아진 시기였다.
윌리엄 액튼이라는 교수는 질산은을 요도에 떨어뜨리는 수술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감각이 마비되면 성욕도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자각몽’ 수련을 통해 꿈속에서라도 외설스러운 꿈을 꾸지 않게 통제하자는 의사도 있었지요. 이때의 지독한 믿음은 현대사회에까지 지속됩니다. 1951년에 설립된 스코틀랜드의 한 협회는 “몽정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불로장생의 꿈...하얀 액체에 있었다?
‘정액’이 신성하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에는 일말의 근거가 있었던 것일까요. 2016년 7월 한 논문이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정액 냄새(AKA 밤꽃향기)의 주성분인 스퍼미딘을 과일파리에게 먹였더니 생명 연장 효과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섹스를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에 진리가 담겨 있을 줄은요.
정액에서 발견된 스퍼미딘은 면역세포의 노화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로장생’은 고대부터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었습니다. 진시황은 사람을 늙지 않게 하는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 중년의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는 ‘정액으로 만든 요리’라는 책이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가짓수도 꽤 됩니다.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정액 요리책’.
하얀 액체를 입에 담는, 불순한 장면이 야동에서만 나오는 게 아닌 세상. 정액을 추앙하는 고대적 세계관의 부활일까요. 야무지지 못한 하체를 바라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정액이란 무엇인가.
<네줄요약>
ㅇ고대에는 신의 정액으로 만물이 창조됐다는 설이 여럿있다.
ㅇ고대 그리스에서도 정액을 몸에 품어야 정력이 넘친다는 믿음이 있었다.
ㅇ기독교 사회에서는 성적으로 보수성이 강해지면서 사정 자체를 불결하게 여겼다.
ㅇ불로장생의 비결이 정액 내 성분에 있다는 논문도 나왔다. 우린 진시황이 찾던 그 존재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ㅇLeick Gwendolyn, Sex and Eroticism in Mesopotamian Literature,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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