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정리하는 자…유품정리사 전애원[왓츠인마이백⑤]

이유진 기자 2024. 3. 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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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인마이백] 유품정리사 전애원씨의 가방을 엿보다. 사진 문재원 기자

전애원씨는 유품정리사다. 고독사로 인해 방치된 망자의 공간 혹은 사건·사고 현장의 유품을 정리한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그 누구도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그는 동료 유품정리사이자 남편인 김샛별씨와 그 이야기를 모아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의 원작인 수필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남겨진 것들의 기록> 두 권을 집필했다.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가 담긴 전씨의 특별한 가방 안을 엿보았다.

전애원씨가 유품정리사가 된 계기는 유품정리 업체 상담원으로 취업하면서다. 고객에게 설명하려면 현장을 직접 가보고 알아두는 게 중요했기에 찾아간 첫 고독사 현장. 이상하게도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유품정리사 전문 인력의 길로 들어섰다.

“시신이 방치된 집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취’가 후각을 자극해요. 태어나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도 없는 그런 냄새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일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죽음이잖아요. 산 사람이 무섭죠, 죽은 사람이 무섭나요?”

고독사한 망자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안타까운 삶의 마지막 기록을 접할 때가 많다. 전애원 유품정리사는 작업용 가방을 챙기는 일이 점점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문재원 기자

무덤덤한 성격의 전씨는 상담 업무 이외에 부수입도 생기니 현장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몇 개월 일을 하던 도중 업체 블로그에 쓴 글을 본 한 출판사로부터 수필집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고독사나 유품정리사에 대한 대중적인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글쓰기는 그의 취미였다. 그는 현장에 나갈 때마다 메모장과 볼펜을 챙겼고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간 수필집이 7년 간격으로 완성됐다. 두 권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번 책 <남겨진 것들의 기록>은 청년 고독사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7년 전과 비교하면 체감상 청년 고독사가 10배 이상은 늘었다고 말한다. 출생률 높이는 것도 좋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과거 청년 고독사 사건에는 뚜렷한 사연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그가 찾아간 한 명문대 학생의 자살 현장. 그는 분 단위로 계획표를 만들어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남겨놓은 일기장을 보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타인의 삶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이 컸고 늘 자신을 자책했어요. 남들 다 사는 이른바 ‘갓생’을 자신은 살고 있지 못한다는 거죠. 그런 현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요. 객관적으로 봐도 죽을 일이 아닌데 아까운 삶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변한 거겠지 싶어 그저 안타까움을 삼켜요.”

남겨진 이의 사연을 담은 자신의 책 <남겨진 것들의 기록>을 보며 오늘 하루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문재원 기자

전씨 역시 유년 시절 얻은 상처로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벌어진 가스 폭발 사고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화상을 남겼다. 그가 대면 직종 대신 전화 상담직에서 주로 일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오면서 화상 자국에 대한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겠어요. 그렇지만 이제 상처받지 않아요. 어느 날 백화점을 갔는데 5m 앞에 있던 한 여성이 제 얼굴을 보고 입을 틀어막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이 정도에 놀랄 거면 요즘 드라마도 못 보겠네’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어요.”

삶과 죽음은 맞닿아있다. 그날의 사소한 사건이나 기분에 따라 누군가는 생을, 누군가는 사를 선택한다. 그는 현장 속 남겨진 이야기들을 펼쳐보며 ‘생각보다 사는 건 힘들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자’라는 힘을 얻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발 토시다. 발 토시는 현장 입구에서 끼고 나올 때 벗는다. 그마저도 무용지물일 때도 있다. 부패물로 바닥이 찰랑거릴 때다. 그런 곳은 들어가 3분여만 작업해도 몸에 밴 냄새가 쉬이 빠지지 않는다.

“섬유 탈취제와 소독제를 늘 지참하고 시도 때도 없이 뿌려도 방법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작업 중 식사는 늘 길바닥에 앉아서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일상이죠. 괜히 식당 갔다가 소금 맞아요.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고요.”

이 봉지 저 봉지, 망자의 물건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단단히 묶여 풀리지 않는다. 쪽가위와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현장의 필수품이다. 문재원 기자

고독사 현장의 물품은 대부분 폐기처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활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쪽에 ‘쪽가위’라고 불리는 전선 가위와 스위스 아미 나이프도 눈에 띈다. 무슨 용도일까.

“노인 고독사 현장을 가면 그들의 한 많은 삶만큼이나 이 봉지, 저 봉지 꽁꽁 묶어놓은 물건들이 많아요. 그걸 일일이 손으로 풀 수가 없어서 쪽가위를 사용해요. 생전 아무리 귀중하게 아꼈던 물건도 주인이 떠나면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리죠.”

장갑, 방진 마스크, 물티슈, 손전등 그리고 메모장과 필기구. 그가 현장으로 나설 때 꼭 챙기는 가방 속 물건이다.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사망자의 80%가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밥 대신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가까운 지인을 곁에 두셔야 해요. 그래야 응급 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욕실 앞에 미끄럼방지용 발 매트를 꼭 두세요. 어이없는 실족사도 상당히 흔해요. 번개탄에 대한 규제도 필요한 상황이에요.”

전씨는 “유품 정리 현장이 점점 줄어 이 작업 가방을 쓰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조금이라도 고독사를 막아보고자 책을 썼다. 누구든 죽은 이, 그리고 남겨진 이의 사연을 담은 자신의 책을 보며 오늘 하루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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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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