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밥상에 조기 한 마리…소중해지니 더 대접 받는 느낌 [ESC]
조기
작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조명치(조기·명태·멸치)’ 전시에 갔을 때, 한국이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식 백반 상에 멸치나 생선구이나 조림 한 토막쯤은 그저 일상적으로 오르는 반찬이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어릴 적 밥상엔 조기가 만만하게 올라왔었다. 당시 조기는 한식 밥상의 구색처럼 여겨질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특별하기보다 익숙한 밥 친구였던 만큼,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 아마도 내 인생 첫 조기를 맛보았으리라. 이유식이 끝나고 엄마가 아기에게 부드러운 진밥에 반찬으로 주는 것이 가시 발라낸 조기 살인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1960년대 말까지 서해 연평도 해역의 오뉴월엔 조기가 지천이라 배에서 배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조기 파시(波市)가 진풍경을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조기는 겨울에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듬해 봄이 되면 서해로 북상해 산란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변화로 조기의 북상 한계선이 점점 내려갔고 그동안 산란기 조기 어획에 대한 국가 규제가 없었기에 조기의 개체가 감소하게 됐다. 그래서 조기 어획 지역은 연평도에서 영광 법성포로, 더 아래인 추자도, 제주도까지 점차 내려가는 추세다. 조기가 북상하지 않는 바다가 되어 버렸으니 당연히 한반도 해역 내 어획량도 현저히 줄고 있고 국산 조기의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민어과에 속하는 조기는 국내에 10여종이 있다. 흔히 참조기가 기준이 되고 이와 유사하게 식당·가정에서 취급되는 것이 ‘부세’다. 부세도 국내에서 잡히긴 하지만 개체 수가 많지 않다. 우리가 먹는 부세는 대개 중국산이다. 참조기보다 크고 맛도 어느 정도 비슷한데 가격이 저렴하니 많이 사용된다. 한편 세네갈 긴가이석태(일명 침조기)가 간혹 국산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어 ‘영광 법성포 굴비 보존협회’에서는 국산 조기 판별에 애쓰고 있다.
조기는 말린 ‘굴비’로 보존된다. 조기가 잡히는 봄철에 소금을 많이 치고 족히 두달 이상을 바짝 말려야 한다. 그것을 뜨물에 불리고 찐 뒤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녹차물에 밥 말아서 얹어 먹는 것이 잘 알려진 방법이다. 말린 조기의 기름과 잡내를 잡기 위해 통보리 속에 넣어 보존한 것을 ‘보리굴비’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돼 바짝 말린 굴비보다 살이 부드럽고 통통한 반건조 굴비로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바짝 말리면 크기가 줄고 쭈글쭈글해져서 오히려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게 현 추세. 하지만 과거 학습된 굴비 맛에 길든 이들은 북어포처럼 단단히 말린 굴비 맛이 안 난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단다.
세월이 흘러 식탁 위의 조기 생산지는 다국적이 됐고 식감도 기술의 발달로 부드럽게 달라졌지만 조기·굴비에 대한 대중 인기만은 변함없다. 밥상 위 조기의 존재감도 커졌다. 뜨끈하게 잘 지은 밥에 윤기 나는 조기 한마리가 오롯이 주어지면 퍽 대접받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친구야
영광 법성포에 가면 조기 판매업소와 식당이 즐비하다. 너무 많아서 결정 장애가 발동될 정도다. ‘친구야’는 법성면사무소 앞에 있는 소박한 식당이다. 전라도 가정집 상차림처럼 밑반찬이 푸근하고 정갈하다. 살짝 말린 조기가 구워 나오고 보리굴비는 쪄서 나와 쉽게 뜯어 먹으면 된다. 푸짐한 양의 조기와 굴비를 한상에서 맛보니 부자 된 기분이다.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굴비길 65-2/061-356-5067/굴비정식 1만8천원, 각종 생선탕(일품요리) 3만5천원부터
무끼
여의도 직장인들의 안식처 밥집. 촉촉하게 먹기 좋은 형태의 보리굴비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른다. 편하게 먹도록 사선으로 푸짐한 반찬이 놓이고 무쇠솥밥의 밥만으로도 군침이 흐른다. 따뜻한 밥을 녹차물에 말아 보리굴비 한점 올리면 행복지수가 가득 차오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7길 18 스타빌딩 지하 1층/02-784-1245/보리굴비 3만3천원
강민주의들밥 본점
‘집밥의 여왕’이라 불리는 강민주 대표가 운영하는 이천 인기 맛집. 울금 가루로 비린 맛을 제거하고 보리굴비의 뼈를 발라 먹기 편하게 서비스하는 점도 남다르다. 가지튀김무침, 마늘종무침 등 흔한 구성 같지만 먹어보면 자꾸 손이 가는 반찬과 갓 지은 돌솥밥이 주는 푸근함이 재방문을 부른다.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22번길 17/0507-1315-6040/금실보리굴비정식 3만원, 들밥 1만5천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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