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 견디게 해 준 고마운 고구마,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 [ESC]

한겨레 2024. 3. 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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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고구마
드럼통 눕혀 혁신적 직화구이
‘구황작물’이 이젠 다이어트식
보름간 실온에 둬야 맛있어
게티이미지뱅크

“야! 너 모자가 그게 뭐냐? 군고구마 팔러 가냐?”

귀 양 옆을 덮는 모자를 썼더니 ‘군고구마 팔러 가냐’니…. 이 패셔너블하면서 따뜻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디자인의 털모자가 어쩌다 군고구마 장수의 전유물이 된 걸까? 다시 곰곰이 따져보면 세상에서 제일 힙한 게 군고구마 장수다. ‘시선강탈’ 디자인과 따뜻한 기능까지 뭐 하나 놓치지 않는 효율성! 게다가 드럼통을 눕혀서 서랍을 만들어 직화구이의 장점과 적절한 스모킹, 그리고 수분을 잃지 않는 세심한 구이 기술까지.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군고구마지! 멀티로 맛있고 멋있는 군고구마!

고구마를 구워 먹는 문화가 아주 오랜 전통인 것 같지만 고구마는 조선 후기 영조 때 일본에서 들여온 작물이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맛이 좋아 백성들이 기르기 용이한 재료라 판단하고 재배를 권장했었다고 한다. 흉년이 들 때도 수확해 먹을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오랫동안 구황작물의 왕으로 대접받았다. 사실 고추가 1500년대에 한반도에 유입된 것과 비교해보면 고구마의 한반도 상륙은 200년 이상 늦다. 그러나 고구마는 겨울철에 없어선 안 될 간식으로 정착했다. 식이섬유가 많아 사계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고구마 하면 군고구마가 제일 먼저 생각날 정도로 굽는 게 고구마 요리법의 정석이다. 고구마는 감자와 달리 싹이 나도 독소가 없어 먹을 수 있다. 고구마 자체가 뿌리인 데다가 줄기와 이파리마저 맛있어서 버릴 게 하나 없다. 고구마를 생으로 먹어도 달달하고 은은한 맛이 있는데 여기에 열을 가해 구워버리면 그 단맛이 몇십배 증폭한다. 촉촉한 수분감, 보드랍게 착 달라붙는 느낌에 꿀을 발라놓은 듯한 극강의 단맛까지 고루 갖춘 팔방미인이다. 굽기만 해도 이 정도인데 요리하면 더 맛있어진다. 단맛 덕분에 피자·케이크·말랭이 등으로 두루 변주되고 사람 뿐 아니라 강아지 간식으로도 사랑받는다.

굽거나 찐 고구마와 김치 조합도 ‘맛있는 논쟁거리’다. 신김치를 얹어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치미 국물을 곁들이는 이가 있다. 김장김치가 많이 익고 동치미가 사이다 같이 톡 쏘는 맛을 낼 정도가 되는 3월이면 지난해 수확했던 쌀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감자·고구마를 김치와 같이 먹게 된 데에는 밥을 대신하던 그때의 습관이 남아있어서가 아닐까? 달콤한 고구마와 시고 톡 쏘는 김치의 조화는 ‘단짠단짠’의 정석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신김치보다 ‘동치미에 고구마’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취향도 탕수육의 부먹·찍먹마냥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도 끝까지 싸우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두텁다. 특히 군고구마에 신김치는 싸늘한 밤에 누릴 수 있는 호사로운 간식의 최고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구마는 감자와 달리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유입된 열대성 작물이다. 고구마를 오래 두고 먹어보겠다며 냉장고에 넣었다간 크게 낭패를 본다. 고구마가 냉해를 입어 무르게 되고 수분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런 고구마는 바로 썩어버리기 때문에 구제할 방법이 없다. 고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보름 동안 실온에 방치하는 것이다. 고구마를 구매한 뒤 씻지 말고 서로 겹치지 않게 넓은 쟁반이나 광주리에 펼쳐 직사광선이 들지 않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그냥 널어둔다. 보름 정도 지나면서 수분이 살짝 날아가고 고구마 겉이 더 단단해지면 딱 먹기 좋은 상태다. 고구마를 손가락 굵기로 썰어서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로 간을 하고 파마산 치즈를 약간 뿌려 잘 버무린 뒤 에어프라이기에 15분 구워준다.

고구마는 매콤한 요리들과도 천생연분이다. 김치볶음밥에 고구마를 잘게 다져 넣으면 단맛과 감칠맛이 더해져 완벽한 밸런스를 연출한다. 제육볶음이나 닭갈비에 고구마를 썰어 넣고 익혀주면 매콤함 사이사이를 메워주는 단맛과 폭신한 질감이 맛을 업그레이드한다.

잘생기면 깎아놓은 밤, 못생기면 고구마를 얘기하는데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단독으로도 맛있고 존재감이 있으면서 그 어떤 요리에 끼워 넣어도 기꺼이 역할을 해내는 멀티플레이어 고구마.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지어다.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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