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북한을 떠나온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태어나서 생활하던 고향 땅 북한을 등지고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달 21일 탈북민 포용 정책 등을 발굴하는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북배경주민과의 동행 특별위원회'로 명명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이제는 북한이탈주민에서 '북한이탈'이란 말의 꼬리를 빼면 어떨까 생각한다"며 "북배경주민이란 용어는 북한 이탈을 넘어서 대한민국 곳곳에 정착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태어난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주민들을 지칭하는 법적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북한이탈주민을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탈'의 사전적 정의는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벗어남"으로 자의로 북한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사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탈북자'라는 호칭 역시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최근에는 상대를 하대하는 뉘앙스를 가진 '자'(者) 대신 '민'(民)을 붙여 탈북민으로 부르고 있다.
결국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두 호칭 모두 북한에서 탈출했다는 객관적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 언론들 역시 탈북민을 지칭할 때는 'defectors from North Korea'라고 적고 있다. "북한에서 온 탈주자 또는 망명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탈북민들은 자신이 '북한이탈주민'으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탈이나 탈북이 탈출 또는 탈주의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탈북민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탈북자'의 대체용어를 선정하기 위해 전자공청회와 여론조사 등을 가졌고 이주민, 새터민, 이향민, 하나민 등 다양한 용어를 선정해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새터민'으로 정했다.
당시 선정 과정에서는 참신성, 대표성, 의미전달성, 활용성, 국제성 등의 기준을 정하고 전문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협조를 받기도 했다.
새터민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북한에서 남쪽으로 와서 정착했다는 의미에 비중을 둬 선정했다.
당시 정부는 2005년부터 관공서 등에서 탈북민을 지칭하는 용어로 새터민을 사용토록 권장했으나 사실상 대체용어로 자리 잡는 데 실패했다
우선 탈북민 스스로가 이 호칭을 마뜩해하지 않았다. 당시 용어 선정 과정에 참여했던 당국자는 "탈북민들은 귀순용사나 자유용사처럼 자신들이 우대받는다는 느낌의 호칭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7년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탈북민 관련 법으로 1978년 제정된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있었다.
이 법은 연평균 10명 미만의 북한주민이 순수 정치적 이유로 남한으로 오던 1993년까지는 유의미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하고 생활고를 피해 남한을 선택하는 북한주민이 1994년을 기점으로 50명 내외로 증가하고 이후 빠르게 늘어나면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이 제정됐다.
여기에다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새터민은 정의의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탈북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사실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이라면 탈북민뿐 아니라 다문화가정 등도 포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통합위가 제시한 '북배경주민'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해 사용될지는 미지수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탈북민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는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규정하느냐를 담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주민들과 관계 설정 등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탈북민의 대체 호칭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서 수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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