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싫은 생명과학자가 데이터·AI 과학자와 만난다면

문세영 기자 2024. 3.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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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ABC연구단 "실패해도 장기 투자해야 바이오·AI융합 연구 결실 맺어"
왼쪽부터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오민환·김형신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 전세영 전기정보공학과 교수.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제공.

질병을 예방하거나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이오산업은 인공지능(AI)을 주목하고 있다. AI는 의료용 센서나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해 수집한 생체 데이터 기반으로 개인의 건강 관리를 도울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대량의 바이오 데이터를 단시간 내 분석해 신약 개발 속도 또한 높일 수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AI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인 ‘알파폴드’가 바이오와 AI 융합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에 극저온현미경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했던 단백질 구조를 딥러닝 알고리즘 기반으로 단시간에 예측할 수 있다. 구글 AI 신약개발 기업인 아이소모픽 랩스는 올해 초 일라이릴리, 노바티스와 AI 신약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빅테크 기업들과 빅파마들이 합심해 AI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바이오인공지능 연구단(AI-Bio Center, 이하 ABC연구단)이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법 등을 찾기 위해 AI와 바이오 융합 연구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전공자 40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체외진단 전문기업 에스디바이오센서가 ABC연구단에게 200억원의 연구비를 쾌척했다.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감 없이 다채로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ABC연구단 소속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전세영 전기정보공학과 교수, 오민환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 김형신 교수를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최근 직접 만났다. 이들은 “연구단은 연구자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성과 도출에 대한 압력을 주지 않는 과감한 연구 환경을 조성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결과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적 압박 없이 연구 결실을 이루는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오민환 교수와 김형신 교수가 동아사이언스와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제공.

Q. 융합 연구 특성상 자연과학 전공자는 공학적 지식이, 공학 전공자는 바이오 배경이 필요하다. 교수들 입장에서도 도전적인 일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나.

백민경 교수(이하 백)=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현재 AI를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를 하고 있다. 수학을 굉장히 싫어한다. AI 관련 논문을 보면 수식도 많고 수학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아 처음 공부할 땐 장벽으로 느껴졌다. 연구단에서 다양한 전공자들과 연구하면서 수학적 이해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반대로 이런 문제를 풀려면 이런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는 분들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오민환 교수(이하 오)= 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반대로 알고리즘, 머신러닝 등을 자연과학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학부 수준에서 다시 공부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연구단은 매월 연구자들이 각자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발표하고 서로 질의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고 같이 연구할 수 있는 접점도 찾고 있다. 

김형신 교수(이하 김)= AI 등의 신기술이 그 자체만으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던 때가 있었다면 이제는 실생활에 정말 유용하냐는 걸 검증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 융합 연구를 통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있다는 의미다. AI는 1년에 논문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조금만 시간을 다른 데 쏟아도 실적을 내기 어렵고 경쟁이 심하다. 융합 분야는 내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도 학습해 나가야 하는 만큼 실적 내는 속도가 느리고 진입 과정에서 펀딩을 받기도 어렵다.

ABC연구단에서는 전문성과 실적이 없더라도 안정적으로 서포트해주기 때문에 연구자 입장에서 불안감을 덜 수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 바이오와 AI 접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알게 됐고 2년차부터 이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수 있게 됐다. 

전세영 교수(이하 전)= 박사 때 주제도 융합이었기 때문에 융합 연구에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다. 전자과에서 박사를 했지만 4년 정도 병원 연구자로 있으면서 융합 연구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병리과 교수와 오랫동안 연구를 함께 했는데 좋은 도전이자 기회였다. ABC연구단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또 다시 융합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 

Q. 연구단이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

백= 출범 1년만에 논문 실적 등 정량 지표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월마다 전체 모임도 하고 별개로 학생들과 저널을 살펴보는 시간도 갖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들도 많이 갖고 있다. 생명과학부에서 짠 코드들을 데이터 전공자들이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서로 신뢰관계를 쌓게 된 것이 하나의 성과로 볼 수 있겠다. 단과대 안에만 있을 땐 만나기 힘든 전공자들과 교류하고 연구의 폭도 넓어졌다. 함께 공유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부분들이 최근 논문에 녹아 들어가는 등 밑바탕이 공고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오= 연구자들에게 연구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1년간 앞으로 함께 협력할 연구자들이 많아졌고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연구실들도 있다. 한 연구에서 파생된 또 다른 연구 과제가 생기는 등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어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김= 연구 지원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선 학생들이 불안한 상태로 연구를 하게 된다. 연구단에서는 처음부터 과제를 세팅하고 팀워크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다. 융합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시야가 넓어져 예전에는 비현실적인 비전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 방향으로의 전진이 필요한 이유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전= 새로운 분야에 노출되면서 연구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연구단은 실패해도 좋으니 도전적인 연구를 하라고 지원하고 있는데 단기간에는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성공한다면 굉장히 큰 결과물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백민경 교수와 전세영 교수가 동아사이언스와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제공.

Q. 실패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AI와 바이오 융합 연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일반적으로 생명과학 연구라고 하면 과학자가 가운을 입고 실험장비를 들고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계산만으로 생명 현상을 살피는 계산생물학 혹은 생물정보학 분야가 있지만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대부분의 생명 현상은 결국 실험실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이해돼왔다.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나 직접 개발한 로제타폴드 등이 나오면서 컴퓨터 계산이 실험 결과처럼 예측을 잘한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믿을만한 결과물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AI 연구 방식이 주목받게 됐다. 단백질 서열 데이터, 구조 데이터, 의료 이미지 데이터 등 생명 현상과 관련한 정보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는데 이를 활용할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단시간 내 예측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실험을 보다 수월하게 설계할 수 있고 AI가 기존 실험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면서 생명과학 연구에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Q. AI는 전통적인 실험의 보조 수단인가, 대체 가능한 도구인가.

백=실험할 필요 없이 계산만 하면 될 것 같아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실험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예측은 예측이다. 항상 틀릴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AI가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체 역할보단 보조 수단으로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수면다원검사를 할 때 의사가 판독을 하는데 판독 결과 일치율이 80%에 불과하다. 전문가들도 AI가 표준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다. 인간보다 균형 있는 결과물을 낼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수면다원검사를 받으려면 여러 검사 장치를 부착하고 하룻밤 검사실에 머물러야 한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집에서 수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센서가 등장하고 있는데 저가의 센서와 고가의 병원 장비의 상관성을 검증하는 데도 AI가 활용될 수 있다. 검사의 대중화 및 편의성을 높이는 데 AI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Q. AI가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데 올해 바이오 분야에서는 AI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가.

백=내가 연구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단백질 구조 예측, 분자 사이 결합 예측 등이 산업과 연계되면서 신약 개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알파폴드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이후 개발자들은 이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더 향상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제는 좋은 도구가 생겼으니 신약 개발 등으로의 응용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올해가 바이오와 AI 융합으로 인한 브레이크스루의 원년이 될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생명과학 연구자들의 AI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본다. 

Q. 강인공지능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생성AI의 왜곡 혹은 편향된 정보에 대한 지적도 있다. 연구단은 AI 연구의 위험성을 고려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나.

백=생성형 AI가 그럴듯한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우려가 커졌다. AI가 좋은 방향으로 활용됐을 때의 파급력만큼 나쁜 방향으로 쓰였을 때의 파괴력 또한 클 것이다. 바이오 분야도 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단백질을 설계하는 AI가 진단 센서나 백신 등을 개발하고 설계하는 데 활용된다면 비용과 시간 단축 등 장점이 크지만 잘못 활용하면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이게 된다.

그래서 ‘바이오 AI 세이프티 회담’을 통해 안전성을 논의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이익보다 해가 클 것으로 생각되는 분야는 개발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면서 연구하겠다는 서명도 받고 있다. 연구자들은 AI의 잠재적 위험성을 인지하고 자정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Q. 2년차에 접어드는 ABC연구단에게 거는 기대도 있을 거 같다. 

전=정기적으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단순 흥미가 깊은 관심으로 바뀌고 연구 주제로 발전하는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 연구비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되고 나 또한 거기에 일조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자 한다. 각 연구자들에게는 경력 제고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김=연구를 하다 보면 깊이감 없이 이것저것 발을 걸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연구단에 소속돼 있는 동안에는 AI 적용이 가능한 많은 응용 분야 중 바이오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분야가 생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ABC연구단은 성과에 대한 압박 없이 펀딩을 주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Q. 정부가 올해부터 도전적·혁신적 R&D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바이오와 AI는 12대 국가전략기술이면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분야다. 정부의 육성 방안과 기조에 대한 생각은?

백=도전적·혁신적 R&D는 이번 정권에서만 나온 얘기가 아니다. 항상 과학 연구 얘기를 할 땐 도전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얘기도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연구라는 게 항상 성공할 수는 없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부분이 훨씬 많다. 도전적·혁신적인 연구를 지원하려면 실패를 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용인해줄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설득력이 있을 거 같다. 정부가 특정 주제를 요청하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바텀업 구조의 과제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전적·혁신적 과제는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장기 투자 또한 필요하다. 현재 단기 과제들이 많은 거 같은데 길게 보고 갈 수 있는 연구들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연구 지원 금액이 클 필요는 없지만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점점 지원을 늘리는 육성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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