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과 마약,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김소연 기자 2024. 3.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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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마약.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편집자주] 과학동아는 1월호부터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수사기술 연구를 가상사건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사건파일 #2 아기 돼지 삼형제

"아니 왜 남의 집을 날려버리냐고요. 또 술 잡수셨어요?"

눈 앞에 앉아있는 용의자, 늑대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늑대 씨는 사실 나와 구면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이전에 만취 상태에서 버스정류장을(!) 입김으로 날려버린 전적이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집을 부수고 다시 내 앞에 앉았다. 

그의 혐의는 입바람을 불어 갓 독립한 사회초년생 김첫째 씨와 그의 동생 김둘째 씨의 집을 날려버린 것. 셋째인 김막내 씨의 집도 부수려다 현장에서 체포됐으니 발뺌할 여지도 없다.

"아유 검사님, 저 요즘 약도 잘 먹고 치료 잘 하고 있어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있다. ‘치료명령 제도’라는 것인데 가상의 캐릭터 늑대 씨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늑대 씨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는 이전에 입바람을 불어 버스정류장을 날려버린 전적이 있다. 당시 법원은 그의 알코올 중독 증세는 분명 치료의 필요가 있으며 늑대 씨가 또다시 공공시설을 날려버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늑대 씨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도록 강제하는 치료명령을 내렸다. 치료명령을 받은 늑대 씨는 성실히 치료에 응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아기 돼지 삼형제’ 사건을 맡은 검사라면 당신은 우선 늑대 씨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잘 받고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늑대 씨가 치료명령에 따라 알코올 중독 치료약을 잘 복용하고 있었는지, 혹시 이번에도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따라 형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술, 그러니까 에탄올은 체내에 흡수된 뒤 대사과정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된다. 몸에 아직 증거가 남아있을 때 서둘러 잡아야 한다.

● 3개월 전 마신 술의 흔적, 모발엔 있다

인체에 남아있는 에탄올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주로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법을 활용한다. 하지만 음주 후 8시간이 지나면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법으로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늑대 씨가 아기 돼지 삼형제의 집을 날린 지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어느 정도 희망을 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담당 연구사의 반응은 달랐다.

“일단 오세요!”

반신반의하며 법화학실의 문을 열었다.

술, 마약, 그리고 페놀 등 유해화학물까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더 자세한 감정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활약하는 부서가 바로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과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법화학 감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1월 2일 오후,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과의 법화학실을 찾았다. 화학물질을 분석하는 각종 장비들이 빼곡히 늘어선 실험실이 기자를 반겼다.

법화학실에서 만난 김진영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구관은 “쉽게 말해 화학과 관련된 감정물은 다 여기로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특히나 (마약 외) 화학감정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야로, 최근 4~5년 사이 연구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과 2024년 법화학실에서는 소변 또는 모발을 분석해 음주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로 소변 샘플을 분석하면 짧게는 1~2일, 길게는 5일까지 음주 이력을 알 수 있다. 모발 샘플을 분석하면 3개월 간 음주 이력을 알 수 있다.

연구를 진행한 김선영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구사는 “소변, 모발 등에서 (술에 들어있는) 에탄올을 바로 찾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대신 인체에 더 오래 남아있는 에탄올 대사체, 에틸 글루쿠로나이드를 찾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doi: 10.1016/j.toxac.2022.06.212, doi: 10.1016/j.jpba.2022.114615)

체내에 흡수된 에탄올은 에탄올 대사체로 전환된 다음 소변으로 배출된다. 에틸 글루쿠로나이드는 에탄올 대사체의 일종이다. 음주 이후 소변을 통해 배출되거나 혈액을 타고 흐르다가 모발에 쌓인다. 이렇게 인체에 남은 술의 흔적은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이중질량분석기(LC-MS/MS)를 통해 잡아낼 수 있다.

LC-MS/MS를 이용하면 혼합물 속 서로 다른 화학물질을 분리하고, 분리된 각 화학물질의 이온화 패턴을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확인함으로써 개별 화학물질을 분자 수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발이나 소변 샘플 속 화학물질도 종류에 따라 분리해 에틸 글루쿠로나이드를 검출할 수 있다.

에틸 글루쿠로나이드가 검출된 모발의 길이를 통해 용의자가 언제 술을 마셨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김 연구관은 “알코올 의존증 치료약물을 복용했다면 복용 이후 알코올 섭취가 줄어 해당 기간동안 모발에서 에틸 글루쿠로나이드가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명령을 받은 대상자의 머리카락에서 에틸 글루쿠로나이드가 검출된다면 이는 제대로 복용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고 했다. 

모발 샘플은 분석하기 전 기기를 이용해 잘게 부숴 가루로 만든다. 샘플을 가루로 만들면 표면적이 더 넓어져 그 안의 화학물질을 더 잘 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 둘 중 오른쪽 튜브에 들어있는 것이 가루로 만든 모발 샘플이다. 과학동아 제공

●김선영 연구사의 모발 분석 뒷이야기

“김선영 연구사가 우리 법화학실의 에이스죠.”

김진영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구관의 소개엔 과장이 없었다. 김선영 연구사는 2022년부터 2023년 사이 법화학실에서 출간된 논문 4건에 이름을 올리는 등 모발 및 소변 분석법 연구에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 
 

● 과학으로 좁혀가는 마약 수사망

알코올 중독 치료를 성실히 받고 있다던 늑대 씨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의 모발 샘플에서 최근 3개월간 꾸준히 술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쩐지, 셋째 돼지인 김막내 씨가 “늑대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런데 조사실에서 다시 마주한 늑대 씨는 이전보다도 더 이상해 보였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가 하면, 얼굴 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며 벅벅 긁기를 반복했다. 가만, 이거 코카인 중독자가 보이는 모습과 똑같다. 그 순간 법화학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법화학실의 오랜 ‘전문분야’는 마약 감정이다. 마약 검출, 마약 지문 연구, 신종마약 파악 등 전범위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마약 범죄 패턴에 대응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마약을 복용한 캐릭터가 수사기관에 복용 사실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모발에 마약의 흔적이 남으니 염색약으로 손상을 가해 모발에 남아있는 약물을 없애려는 의도다. 이 같은 수법에도 대응책은 있다.

화학분석실의 연구자들은 “분석기기의 성능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서 극미량의 약물도 잡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소개한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분석을 수행하면 머리카락 무게 1억분의 1에 해당하는 코카인과 코카인 대사체까지도 잡아낼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해마다 종류가 다양해지는 신종 마약에 대응하는 서승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구관은 “과거에는 감정관들이 모든 마약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학회나 외부 기관과의 정보 공유를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마약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약 문제는 연구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복지 등 다방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희승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구사는 “마약지문 감정 건 수가 2022년 대비 2023년 2배 이상 늘었다”면서 “마약지문의 경우 발견된 마약이 어느 조직에 의해 합성됐는지 역추적하는 기술이다 보니 감정 건들이 대부분 100g 이상 단위로 유통되는 대량 유통 건임에도 수치가 이렇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겁니다. 그러니 감정 분야에서도 국제공조가 필수적이죠. 마약지문의 경우 각국의 마약 감정기관들이 감정법을 표준화해서 서로 자신들이 압수한 마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해외 유통망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무적 측면에서 인력으로 인한 한계나 외교적 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데이터에 이상한 구석이 있어 살펴봤더니 이거 마약이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분석 결과 늑대 씨의 머리카락 샘플에서 코카인이 발견됐다는 전화였다. 이제 늑대 씨는 치료명령 불이행 뿐 아니라 마약 복용에 대한 벌까지도 받게 된다. 놓칠 뻔한 범죄의 진실을 명확한 증거가 찾아낸 것이다.

마약의 종류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2023년 5월12일 전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합성마약 ‘야바’를 판매한 불법체류 태국인 일당을 검거했다. 과학동아, 전라남도경찰청 제공

● 서승일 연구관의 신종 마약 추적 뒷이야기

“(신종 마약을 추적하는 일은) 정부기관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약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새로운 마약을 개발하는 양상이기 때문에, 해외 마약 규제를 파악하고, 표준 신종 마약 샘플을 찾아 분석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승일 연구관의 주요 업무인 신종 마약 추적은 ‘쉼’이 없다. 매년 달라지는 마약 트렌드를 분석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변화하는 신종 마약 트렌드를 잡아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2월호, [검찰청 과학수사노트 2] 알코올과 마약,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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