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 노트] 잊지 마라, 우린 식물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다
1862년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난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파랑새가 사는 행복의 나라’를 찾아 나선 남매의 모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친숙할 것이다. 1908년 러시아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초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이 희곡은 오늘날 주로 어린이용 동화 버전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고, 지금 당신 곁의 그 ‘파랑새’를 알아보라는 가르침만은 모든 세대에게 진실하다.
겐트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마테를링크는 한동안 파리에 체류했는데, 이때 프랑스 상징주의 작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초기 희곡들은 상징주의의 특징인 운명론과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그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사색하는 모럴리스트에 가까워진다.
1906년부터 1914년까지 마테를링크는 노르망디의 생방드리유(Saint Wandrille) 수도원을 임차해 그곳에서 거주하며 ‘파랑새’를 썼다. 649년에 건립된 이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장장 12세기 동안 파괴와 복원을 거듭하며 명맥을 유지했으나, 프랑스혁명으로 가톨릭교회 재산이 국가에 몰수되면서 수도원의 기능을 상실했다. 숲으로 둘러싸이고 대규모 정원과 텃밭이 있는, 허물어져가는 수도원에서의 호젓한 생활은 마테를링크에게 세밀한 눈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생의 경이를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꽃의 지혜’는 바로 이 시기에 쓰인 산문집이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꽃들에게 갖가지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고 애착을 품어왔지만, 식물에게 왜 그토록 다양한 빛깔과 향기와 형태를 가진 꽃이 필요한지에는 무심하다. 한곳에 붙박인 삶을 살아야 하는 식물에게 인생이란 부모에게서 벗어나, 가능한 한 멀리 퍼져나가는 일뿐이다. 이 고단한 숙명에 따라 식물은 비와 바람, 벌과 나비, 새와 짐승과 인간을 이용해 씨를 퍼뜨리는 교묘한 기술들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놀라운 인내와 지략, 희생과 독창성으로 제 존재를 무성케 하려는 지난한 투쟁이다. ‘꽃의 지혜’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고,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식물의 분투에 목숨을 빚지고 있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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