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지상주의, 특권과 반칙 판치게 해… 피해자는 아이들입니다”
[정시행 기자의 드라이브] ‘괴물 부모’에 직격탄 날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24세 여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9월엔 대전의 40대 초등 교사, 용인 60대 고교 교사가 비슷한 이유를 담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교사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만연한 학부모 갑질에 교사들이 집단 저항한 유례없는 사태였다.
새 학기를 맞아 학교는 다시 문을 연다. 겨우내 상처가 아물기는 한 걸까. 청소년·청년 정신질환과 교사 등 집단 트라우마·심리 치료의 권위자인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58) 명지병원 교수는 “서이초 사건은 단순히 교권(敎權) 추락이 아닌 공동체 붕괴의 문제”라며 “내 아이만 잘되게 하겠다고 선생님을, 남의 자식을 부수고 결국 자기 자식도 망치는 ‘괴물 부모’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진료실 밖에서 위기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만든 대안학교(별의 친구들) 교장이기도 하다. 의료계와 교육계에서 ‘사춘기 통역사’ ‘교사들의 치유자’로 불린다. 최근 저서 ‘괴물 부모의 탄생’에선 부모들이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에 빠져드는 환경을 해부했다.
◆누가 괴물 부모가 되는가
-괴물 부모가 뭡니까.
“2000년대 초 일본에서 나온 말입니다. 2006년 도쿄 신주쿠 초등학교의 23세 여교사가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대표적 사건이에요. 서이초 사건과 판박이죠. 일본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괴물 부모)는 ‘교사 사냥꾼’으로도 불렸어요. 교사에게 ‘담임 맡는 동안 임신하지 말라’ ‘내 아이는 청소시키지 말라’ ‘들판에 나가 내 아이가 햇볕에 탔으니 피부를 원상 복구 시켜라’ ‘내 아이 사진이 적으니 수학여행을 다시 다녀오고 사진을 잘 못 찍는 담임을 교체하라’고 요구했다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그래서 교사 사냥꾼이군요.
“홍콩에선 자녀의 왕자병·공주병을 부채질하는 부모들이 나타났고요. 한국에선 내 자녀를 특별 대우 할 것을 강요하는 ‘진상 부모’가 등장했죠.”
-왜 아시아에 이런 현상이 집중되지요?
“일본과 홍콩, 한국 괴물 부모의 배경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교육비와 주거비가 높은 탓에 저출생이 심각하고, 아이가 귀해지니 과잉 보호가 습관이 됐는데, 대가족 붕괴로 도덕과 가치를 훈육할 공동체는 사라졌다는 겁니다. 핵가족 안에도 가부장적 문화는 남아 있어서 아빠는 돈 벌어오고 엄마가 독박 육아 하는 경우가 많죠. 학벌 사회에서 자녀의 입시와 인생 성적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부모가 집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육아에 올인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통제하려 하고, 사회에서 보상받고 싶어하며, ‘내 자식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심리가 커집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지난 3년간 학부모 민원 때문에 학기 중 담임 교사가 교체된 경우는 129건이나 됐다. 이 중 초등 교사가 102명이었다. 실태 보고서엔 “급식에 나온 귤을 왜 까주지 않았느냐” “애를 하교 후 학원에 데려다 달라” “마음 다치니 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말라” “임원 선거에서 기호 1번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해놨으니 기호를 바꿔 달라” “아이가 선생님을 따라 하고 싶어 하니 반지 끼지 말고 아이폰도 쓰지 말라”는 요구들이 나온다.
학교 폭력 가해자의 부모가 “나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학교 찾아가 개판 쳐볼까요?”라고 교사를 위협하거나, 교실 밖에서 수업을 지켜본 부모가 “제가 전공자인데 그렇게 지도하면 안 되죠. 당장 그만두세요”라고 한 경우도 있다.
교육부 공무원이 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왕의 DNA가 있으니 왕자 대하듯 하라. 제지하는 말 하지 말고, 또래와 갈등이 생기면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한 사건도 공분을 일으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자녀를 의대와 로스쿨에 보내려 각종 편법과 특권을 이용한 것이 백미로 꼽힌다.
김 교수는 “‘내 새끼 지상주의’는 특권과 반칙, 예외를 허락해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풍조, 즉 하류(下流)사회를 만든다”면서 “최대 피해자는 바로 괴물 부모의 자녀들”이라고 말했다.
◆1020 정신 질환 급증, 우연 아냐
-괴물 부모의 자녀들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스트레스 회복력이 낮으며, 충동적이고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해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요. 이런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생 때까진 순종하다가, 사춘기에 계속 부모를 대행해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터져요. 그게 우울증과 자해,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요즘 10~20대 정신 질환이 급증했다면서요.
“1020 세대의 정신병동 입원은 최근 2~3년 새 두세 배 늘었고요, 외래 환자는 더 폭증했어요. 다른 연령군에 비해 압도적 증가세입니다. 신규 환자는 6개월 이상 대기해야 볼 수 있어요.”
-성별 차이도 있습니까.
“자해나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건 대개 여학생이에요. 남학생은 우울증이 포기나 게임 중독, 은둔으로 나타납니다. 상황이 워낙 심각하니,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일본 등 외국 학계에서도 한국을 연구하러 올 정도예요. 제가 청소년 우울증과 저출산 등을 주제로 2월에만 외신 인터뷰를 네 건 했습니다.”
-청소년 정신질환이 늘어난 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적 현상인데요.
“그렇습니다. 어른들이 팬데믹으로 2년여 불편하게 산 정도라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해 사회·정서적 경험이 단절된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사춘기는 우정을 배우고 가족 밖에서 새로운 소속감과 힘을 얻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고립이 길어지다 보니 친구와 선생님이 낯설어졌고 공동체를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코로나 때 입시만 준비해 대학에 간 친구들은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실제로 그런가요?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 관리를 잘 못하고, 자유로운 의사 결정도, 단체 발표나 축제 준비도 어려워합니다. 미국·유럽 정부는 코로나로 갇혀 산 청소년들의 심리 치료를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는 등 공동체 복구에 많은 투자를 했어요. 우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여파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겁니다.”
-괴물 부모에 코로나, 공교육 붕괴가 맞물린 거군요.
“정신과에 가야 할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으니 학교가 붕괴될 수밖에요. 가뜩이나 한국 교사들은 선진국에 비해 수업뿐만 아니라 여러 행정 업무를 과중하게 부담하는데요, 정서 행동 위기 학생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괴물 부모는 내 자식이 손해 볼까 봐 더 안달합니다. 교사 설문에선 3명 중 1명이 ‘우울감을 느낀다’고 하고, 3명 중 2명은 ‘인격 모독을 받아본 적 있다’고 해요. 교사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옛날엔 학생과 관리자였다면, 이젠 학부모입니다.”
◆‘내 전부’라면서, 대화 없는 가족
수년 전 한국·미국·일본·중국 가족의 대화 시간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대화 시간은 한국이 압도적 꼴찌였고, ‘부모가 내 고민을 들어준다’고 답한 자녀 비율도 한국이 가장 적었다.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에서 오히려 대화가 제일 길었다. 김 교수는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부모가 많은 한국에서, 정작 부모 자식 간 소통이 적다는 건 상징적인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렇게 열성적인 부모들이 자식과 대화를 안 한다니요?
“학원 왜 빠졌냐, 숙제 다 했냐,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이런 일방적 지시나 질책은 대화가 아니니까요. 아이들 심리 상담을 해보면 ‘부모가 본인 체면을 중시할 뿐 내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외로워합니다. 요즘 아이들 문제 행동의 가장 큰 뿌리는 외로움이에요.”
-모자(母子) 동일시 사회라고 할 만큼 애착이 강해도 외로울 수 있습니까.
“한국 부모들은 자신과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도 계속 도와줘요. 자녀 양육 기간이 평균 35년이라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길죠. 또 가정이 부부간 애정을 중심으로 유지되기보단, 자녀 사랑에 복무하기 위해 부부가 협력하는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 점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해요. ‘우린 너밖에 없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란 말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모의 욕망을 홀로 대리해야 한다는 점을 자녀들은 상상 이상으로 부담스러워합니다.”
-요즘 부모들은 육아·교육 정보를 많이 모으는데, 자녀를 속속들이 알지 않나요.
“괴물 부모들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녀를 잘 알지 못해요. 자녀의 순위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 손쉬운 대상이 교사죠. 괴물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진심으로 부모 자신이 지는 것이거든요. 이게 괴물 부모의 중요한 역설입니다.”
-책임 회피가 공격성으로 나타나는군요.
“괴물 부모의 심리를 파고 들어가면, 기저엔 본인이 경쟁에서 패배했거나 패할지 모른다는 자기 증오 내지 자기 연민이 있어요. 그래서 내 자식은 고통과 좌절을 아예 겪지 않게 문제를 미리 치워주려 합니다. 이런 이들을 돌이 매끄럽게 구르도록 앞에서 열심히 비질하는 스포츠 컬링(curling)에 빗대 ‘컬링 부모’라고도 합니다. 이런 부모는 서열에 민감하고 끝없이 남과 비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비교에서 밀려나는 순간 공격 버튼이 작동하지요.”
◆혼자 잘난 아이는 잘될 수 없다
우리보다 먼저 괴물 부모 현상으로 몸살을 앓은 일본에선 10여 년 전부터 대대적 자정 캠페인이 일어났다. 학교 폭력과 이지메(집단 따돌림), 잇따른 존속 살해, 히키코모리(은둔 청년), 무기력한 ‘하류 사회’ 등장은 잘못된 양육 문화 탓이라는 반성이었다.
“혼자 잘난 척하며 큰 아이는 잘될 수 없다”는 슬로건 아래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회복 운동이 전국에서 펼쳐졌고, 교사 보호 매뉴얼이 배포됐으며 교사와 학부모 모임도 활성화됐다. 또 중산층 강화 정책과 빈부 격차 해소, 입시 부담과 대학 서열 완화, 청소년 소셜 클럽 활성화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신주쿠 교사 사건을 교사 집단의 권익만이 아닌, 공동체 붕괴 문제로 다루니 실마리가 풀린 거군요.
“일본도 30년쯤 헛바퀴 돌다가, 결국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을 갈아넣는 사회에선 아이들이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 자기만 잘되겠다고 경쟁하면 불행한 경험이 쌓이고, 이런 세대가 자라나면 출산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요즘 정부와 기업에서 저출산 대책에 현금성 지원을 많이 하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예요. 행복해야 돈도 쓰고 가정도 이루지요.”
-청소년을 둘러싼 공동체 붕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난다고 봅니까?
“아이들이 믿고 대화할 어른이 너무 없어요. 청소년과 청년에겐 부모와 다른 가치를 보여주고 다른 차원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현실 사회에 적응할 힘을 키워요. 그런데 밤늦게까지 학원에 매여 있고, 명절에도 시험 공부 하느라 조부모나 친척도 만나지 않죠. 종교 활동도 후순위로 밀리고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정서적 풍요가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갈증을 채워줄 존재가 학교 선생님인데, 중·고교에서 교사와 학생 면담이 한 학기에 1시간도 힘들다고 해요.”
-미국과 한국만 비교해도 학교나 동네 풍경이 너무 다르더군요.
“미국 부모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자녀들이 지역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스포츠·문화 활동을 즐길 스케줄 짜는 거예요.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선 스무 살이 된 아이들에게 유로패스(대륙 기차표) 쥐여주고 장기 여행을 해보게 해요. 우린 그런 기회가 거의 없죠.”
-학원에서 시간 보내는 건 공동체 생활이 아닌가요?
“학원은 초등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심리적 영향을 거의 못 줍니다. 어떤 정서적 교감도 소속감도 느끼지 못해요. 경쟁 기술만 배우는 곳이니까요. 성인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삭막한 거예요. 사교육이 필요한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가정의 모든 자원을 흡수하면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 돕고 싶다
- 한국은 모든 연령대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데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자살률 1위에 처음 오른 게 1998년이니 25년 넘었죠. 학계에선 ‘한국은 스스로와 내전을 치르는 국가’라고들 해요. 중동 등 분쟁 지역에서 전쟁으로 죽는 사람이 국가당 연 1만5000명에 못 미쳐요. 그런데 한국에선 연 1만3000여 명이 자살하거든요.”
-그렇게 많은가요?
“자살률 1위라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이전에 1등 했던 나라들은 깜짝 놀라서 온갖 방법을 강구해 자살률을 낮췄어요.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방치한 나라는 한국 말곤 없어요. 우린 자살을 나약한 개인의 문제로 볼 뿐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둔감한 걸 넘어 잔인해요. 한국 자살 예방 정책 예산은 미 뉴욕주의 20분의 1, 일 도쿄도 예산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교수님은 행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까.
“가난했고 상처가 많았어요. 부친이 사업 빚을 많이 져서, 중학교 때부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어요. 친척 집에 얹혀살다 일찍부터 자취를 했고요. 그래도 사회에서 믿을 만한 어른을 많이 만났어요.”
-왜 정신과 의사가 됐나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로 의사 일을 시작했어요. 빈곤과 소외, 지적장애와 범죄의 상관성을 다루다 보니, 환자가 범죄자가 되지 않게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의뢰하는 지역사회 심리 치료를 많이 맡게 됐습니다.”
- 의사가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건 이례적인데요. 사재를 털어 세웠다면서요?
“의사 해서 번 돈 학교에 다 쏟아부었죠. 제 꿈을 좇다 보니, 결혼 30년인데 아직 내 집도 없어요, 하하. 그래도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위해선 병원뿐만 아니라, 치유와 교육과 복지가 어우러지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갈 길은 아직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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