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25] 카사블랑카 릭스(Rick’s)카페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모로코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도시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도시보다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 더 친숙하다. 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의 격변기이던 1942년 고전 작품이라서 현재 중장년 팬들도 개봉관보다는 TV를 통해서 시청한 경우가 많았다. 주옥같은 대사들을 남긴 영화로도 유명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와 같은 창작 번역은 다양한 패러디도 만들어냈다.
원본은 브로드웨이의 연극용으로 집필되었으나, 마땅한 제작자를 찾지 못하던 차에 워너브러더스사가 판권을 구매, 영화로 제작했다. 실제로 작가는 카사블랑카는 물론, 모로코도 가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글을 썼는데 이유는 “실제로 방문하면 그 환상이 깨질까 봐”였다고 한다. 당연히 영화 속 주 배경인 ‘릭스 카페(Rick’s Cafe)’ 역시 실제로는 존재한 적이 없던 가상의 장소였다.
1998년부터 모로코의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직원 캐시 크리거(Kathy Kriger)가 있었다. 모로코에 머물던 그녀는 9·11 테러가 터진 직후부터 이슬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늘어나는 걸 목격했다. 그리곤 이 시기에 미국인으로서 이슬람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를 고민했다. 그 생각의 중심은 ‘톨레랑스(Tolerance)’였다. 그녀는 영화 속 카페를 실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곤 카사블랑카의 맨션을 구입,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중정을 둘러싼 회랑의 아치와 발코니, 영화 속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진(Gin)을 마시던 바 등 영화 세트 속 디자인을 재현했다. 그렇게 2004년 3월 1일, 영화가 제작된 지 62년 만에 실제 공간으로의 ‘릭스 카페’가 탄생했다.
오늘날 여기선 현대판 샘(Sam)이 주제곡 ‘애즈 타임 고즈 바이(As Time Goes By)’를 라이브로 연주한다. 금방이라도 잉그리드 버그먼이 카페의 한편에 나타날 것만 같다. 영화의 기억을 가지고 카페를 찾은 고객을 정확하게 그 시절과 장소로 데려가준다. 대단한 공간력(空間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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