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이론가 이승만의 혜안, “공존은 가능한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23회>
“건국전쟁”이냐, “백년전쟁”이냐?
이승만의 진실을 밝힌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27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거짓부렁과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부박한 시대, 대중은 “건국전쟁”을 보면서 거짓 신화를 깨부수는 팩트의 위력에 충격을 받고 있다. 대동강 다리를 한강 다리로 둔갑시키는 사기 집단의 선동술, 사료를 날조하고 정보를 조작하여 이승만을 암살범, 학살범, 폭력범, 간통범, 횡령범, 친일파, 반역자로 몰고 간 음해 세력의 선전술에 속수무책 속고만 살아온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대중의 충격과 시민의 분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갑작스러운 이승만 현상을 낳고 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다. 이승만 재평가 없이는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 대한민국의 학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역사의 악인(惡人)으로 만드는 집체적 역사 왜곡을 자행해 왔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극좌 세력은 북한의 김씨 왕조와 통일전선을 이루고서 ‘이승만 죽이기’에 앞장서 왔다. 급기야 중학교 역사 교사가 수업 중에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로 이승만의 인격을 살해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2012년작)을 상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때 한 학생이 ‘이승만은 민주주의자였다’고 반박하자 교사는 “손 들고 복도로 나가라” 했다. 역사의 상식을 말하는 학생의 발언권을 교사가 무참히 짓밟는 순간이었다. 북한이나 중국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인권유린이다. (2024년 2월 20일, 조선일보, “매달 1만원 보낸 고교생, 기부금에 詩 첨부 80대...이승만 기념관 100억 모금.”)
북한식 정치전(政治戰), 대한민국 파괴 공작
세계 10대 부국이자 대중문화 선진국 코리아의 학교 교실에서 어떻게 그토록 무지몽매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의 극좌 전체주의 세습 전제국가가 대한민국을 향해서 펼쳐 온 정치전(政治戰, political warfare)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군사 전략가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은 전 세계 자유 진영 국가들을 겨냥해서 지속적인 정치전을 자행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기본 노선에 따르면 정치전은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전쟁”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전쟁의 부재가 곧 평화”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전쟁은 물리전(物理戰, kinetic warfare), 곧 무력 충돌에 국한된다. 무력 충돌은 전쟁의 한 양상일 뿐이다. 냉전 이래 공산 정권은 “평화”의 시기에도 은밀하게 자유 진영에 침투하여 정치전을 펼쳐왔다. 정치전은 심리전(心理戰), 이념전(理念戰), 선전전(宣傳戰), 언론전(言論戰), 방송전(放送戰), 학술전(學術戰), 문화전(文化戰), 사이버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복잡한 양상의 진지전(war of position)으로 전개된다.
대한민국의 소위 “진보세력”은 1980년대 이래 북한의 김씨 왕조와 이념적으로 결탁하여 대한민국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이념전쟁에 몰두해 왔다. 북한의 정치전은 1980~90년대 남한의 주사파 운동권 집단을 통해서 대한민국 학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를 파고들었다. 일례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미제”와 “이승만 괴뢰도당”을 몰아내려는 남로당 빨치산 세력과 북한 김일성 정권의 연합 작전을 찬양하고 미화한 작품인데, 7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 <<태백산맥>>을 읽으면 누구나 김일성의 대남침략은 “민족해방 통일전쟁”으로, “이승만 도당”은 “분단의 원흉”이자 “미제의 꼭두각시”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反전체주의 이론가 이승만의 혜안
구소련이 붕괴하고 동구 공산정부가 줄도산하던 시절,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남로당 빨치산 투쟁과 김일성의 대남침략을 “민족통일”과 “인민해방”의 이름으로 미화하는 시대착오에 빠져들었다. 남한의 극좌 세력이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파괴하는 북한의 정치전을 대리로 치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세력은 어김없이 이승만을 향한 인격 살해의 칼날을 휘두른다. 왜 그래야만 할까?
이승만은 1950년대에 이미 공산 세력의 정치전을 꿰뚫어 보고 치밀한 정치적 논리로 전 세계 자유 진영을 향해서 반공 연대를 촉구했던 당대 최고의 이론가였기 때문이다. 1955년 9월 25일 미국 워싱턴의 유력지 <<이브닝스타(Evening Star)>>는 일요판 <<선데이스타(Sunday Star)>>에 무려 5면에 걸쳐서 이승만의 시론 “공존은 가능한가?”를 게재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로 들어간 지 2년 만이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 사후 집권한 흐루쇼프는 “평화적 공존”을 부르짖고 있었다. <<이브닝스타>>는 미국 전역에서 널리 읽힌 소위 ‘등재 일간지(Newspaper of Record)’였다. 특히 이승만의 시론들을 게재하던 1950년대에 이 신문은 수백만 부를 찍어내는 인쇄소를 갖추고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문제의 시론에서 냉철한 이론가 이승만은 평화의 시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전개하는 이념전쟁(理念戰爭)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하면서 자유 진영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슬픈 중국”에서 지난 22회에 소개한 “나는 왜 홀로 섰는가?”만큼 강력한 문장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이론가의 통찰, 전략가의 지략, 예언자의 혜안, 정치가의 신념이 깃들어 있다.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이 글은 한국 외교사에 빛날 최고의 명문이며, 한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문서이다. 70년이 다 된 지금 읽어도 현장감과 시의성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지난 회처럼 이번에도 전문을 완역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이 글에서 이승만은 공산 세력의 “이념전쟁”에 대항한 자유 진영의 적극 대응을 촉구했지만, “건국전쟁”이 조목조목 지적하듯, 그는 가짜뉴스와 역사 왜곡이 범람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스스로 “이념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잠시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69년 전 이승만의 육성에 귀 기울여보자. 편집자의 변(辯)대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누구도 이 글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으리라.
“공존은 가능한가? (Is Co-Existence Possible?)”
(편집자) 전 세계가 평화 논의로 분주한 이때, 조국의 절반을 공산 세력에게 잃은 한 유명 정치가의 엄중한 경고를 게재한다.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번역: 송재윤, 이동민)
질문: 오늘의 질문은 캘리포니아 샌마테오(San Mateo)의 미셸 말터(Michel Malter) 양이 보내왔다. 말터 양은 “명예로운 공존은 가능한가(Is honorable co-existence possible)?”라 질문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에게 답변을 듣고 싶다고 특별히 요청했다.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 여러분은 정전 상태의 한국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이 생생한 현장 보고가 다음 달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외무장관 회담에서 논의될 세계 문제의 중요한 일면이라 생각할 것이다.
답변: 평화에 굶주리다 보면 언제나 투쟁을 기꺼이 포기해버리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특히 투쟁을 포기하는 방식이 베일에 싸여 있거나 유화적이거나 쉽게 알 수 없도록 은폐되어 있을 때라면······.
실제로는 오늘날 자유세계가 공산주의에 흡수될 위험이 어느 때보다 크다. 자유세계 여러 국민의 맑은 정신이 과도한 희망과 근거 없는 확신으로 혼탁해져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정복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기본적 사실은 한 치도 변함이 없는데, 크렘린이 내뿜는 거짓된 감언이설과 얄팍한 겉모습에 자유 국가들은 속절없이 현혹되고 있다.
요즈음 같은 때에는 민주국가의 최고 지도자라 할지라도 아이들 동화책에서 “빨강 망토 모자 소녀(Little Red Riding Hood)”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면 그들은 최근 불가닌(Nikolai Alexandrovich Bulganin: 1895-1975; 흐루쇼프 집권기의 소련 수상 1955-58) 씨가 쓰고 있는 할머니 모자 바로 밑에서 늑대의 탐욕스런 눈빛과 날카로운 이빨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사상이 과거 중국 정치의 핵심 사상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공공연히 다 알고 있다. 바로 “하늘의 태양은 하나, 땅의 통치자도 하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전통 아래서 우리는 전쟁의 부재를 평화라 여긴다. 그런데 공산주의 철학자들은 이념전쟁(ideological warfare)에 의한 새로운 정복의 방법을 개발해 왔다. 앞으로 이 점을 이해하여 효과적 반격 수단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궁에 빠질 것이다. 최근의 역사와 당면한 세계정세를 간략하게나마 검토해 보면 이념전쟁이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섯 가지 새로운 종류의 전쟁 (Five New Kinds of War)
1. 사회적 소요(Social Unrest). 첫째로, 사회적 병폐나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공산주의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해 먹는다. 올해 영국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노조에 침투하여 파업을 선동하고 계급적 증오심을 부추긴다. 그들은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가공할 규모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노조를 파고들었다. 또한 그들은 인종갈등이 있는 곳에선 서둘러 약자(underdog)의 옹호자를 자임한다. 식민주의가 문제가 되는 지역에선 민족주의의 불길을 부채질하고 인종적 증오심에 격화하려 전력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종 갈등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와 남아프리카연방[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신]에서는 인종 평등의 벗이지만, [식민주의가 문제인]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인종 평등의 적이 된다.
2. 법질서 교란(Civil Disorder). 분란이 격렬하게 폭발하여 반란으로 치닫는 곳이면 어디서나, 공산주의자들은 법과 질서를 전복하는 자들을 전폭 지원한다. 인도차이나에서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하였고 그들의 전복 공작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와 마우마우단의 나라(Mau Mau country,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 지역의 독립 요구를 이용하여 민주 동맹을 악랄하게 약화시키려 온 힘을 쓰고 있다.
3. 중립주의 정책(Neutralism). 공산주의자들은 안전을 원한다면 자유세계와 유대를 끊어야만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중립주의” 정책을 설교한다. 지난 몇 년간 그들은 인도, 버마,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소위 아시아-아프리카 권 일부 국가들의 지도부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는 데에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4. 경제적 압박(Economic Pressure). 또한 공산주의자들은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열강들 틈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전 세계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다. 최근 전쟁에서 패배하여 경제 전망이 어두운 일본은 공산 세력이 침투하려 눈독을 들이는 곳이 되었다. 그들은 일본 국민에게 시장과 원료 공급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과거 군사 제국의 회복을 돕겠다고 약속한다. 그들은 일본인들에게 계속 이차대전에서 놓쳐버린 (한국을 포함한) 일본의 식민지들이 다시 일본 차지가 될 수도 있다고 떠벌린다.
5. 전쟁 위협(War Scares). 끝으로, 그들은 영국처럼 전쟁에 지친 국가들을 향해서 끊임없는 선전으로 새로운 세계대전의 공포와 위험을 호소한다. 자유국가들이 실제 전투를 촉발할 수 있는 모든 방어적 조치를 포기해야만 전 지구적 패권 경쟁은 선전활동과 경제적 경쟁이라는 신사적인 차원으로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한편 미국은 자유세계를 이끌고 다방면의 전선에서 바로 이러한 공산주의의 전 세계적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미국은 다양한 형태의 장점을 갖고 있고, 그중에서도 특히 인류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가장 생산성 높은 사회이지만, 기질적으로 그러한 투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위협 (Danger to Freedom)
핵심적 문제는 민주주의의 본질 그 자체다. 자유 진영의 국민들은 자유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한 도전이 닥치면 분연히 일어나 싸울 것이다. 그들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나 동맹국의 자유를 위해서도 싸울 것이다. 그러나 자유 진영은 경제적으로도 큰 풍요를 누리기에 가급적이면 싸움을 회피하려 하지만 그 때마다 큰 규모의 희생이 따른다. 이러한 특성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이념전쟁을 벌일 때 소련에는 엄청난 자산이 된다.
자유세계는 미국의 비할 바 없이 큰 아량과 희생에 큰 은혜를 입었으며, 그중에서도 우리 한국인은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참담한 현실은 한국전쟁에 따른 큰 희생까지 기꺼이 치를 만큼 큰 아량일지라도 이후 한국에서 나온 정전 협상 같은 무익한 타협책으로 상쇄되어 버린다면, 미국이 아량을 베푼 본질적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지고 있다 (Still Losing)
미국인들은 당연히 내게 물을 것이다. 미국의 넓은 도량 덕분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크게 혜택을 본 나라가 당신네 나라이거늘 당신은 왜 불평하는 기색이냐고.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나는 위대한 미국 국민이 실제로는 여전히 지고 있는 전 지구적 전쟁(the global warfare)을 이미 다 끝났다고 여겨버리는 비극적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미국인들을 도와야만 하는 나의 명백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바로 지금 공산주의자들은 소리 높여 “평화적 공존(peaceful co-existence)”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앞서 요약한 다섯 형태의 세계 투쟁을 거침없이 계속 강화할 기회만 엿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직적인 이념 공세에 대한 미국의 저항이 느슨해지기를 원한다.
“평화적 공존”이란 판문점에서 체결된 불행한 정전협정을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에서 따낸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한국은 먼 나라일 뿐이며, 한국전쟁도 필시 이미 먼 옛날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전 투쟁에서 가장 중차대한 바로 이 지역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나는 날마다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가장 엄중한 약속을 어떻게 스스로 깨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를 보고 있다. 여기 그 기록의 일부가 있다.
● 판문점에서 내 희망에 반하여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어떠한 공군 병력도 북한으로 들여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최소 300대의 제트 전투기 외에 더 많은 다른 유형의 군용 비행기를 들여왔다. 그리고 그들은 35개 비행장을 복구했으며, 더 많은 전투기와 폭격기를 수용하기 위해 12개 비행장을 신축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귀환을 희망하는 모든 포로를 즉각 송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남은 미군 조종사단의 석방을 2년간 미루었고, 2만여 명의 대한민국 군인과 우리의 민간인 납북자들 수십 명을 여전히 억류하고 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중립국 정전 감시위원회를 설립하여 정전협정의 준수를 강제하게 되어 있었다. 유엔 측은 진정한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을 지명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러시아의 두 괴뢰국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추가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정전협정에 위반되는 전력 증강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남한 양측의 “출입항”을 정기적으로 시찰해야 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본부를 우리 측에 배치함으로써 남한 내의 모든 군사적 발전 과정을 면밀하게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는데, 공산 측 위원들은 진정한 중립국 위원들이 북한 내 군사 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중립화된 전전[=비무장지대] 양측의 어느 쪽도 군사력 증강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유엔-한국군 측의 병력은 2개 사단을 제외한 미군 전부와 나머지 유엔군의 거의 전부가 철수함으로써 대폭 감축되었다. 반면 감시위원회의 스웨덴과 스위스 위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휴전협정을 직접 위반하여 인원, 중포병대, 전차, 보급물자가 여러 차례 기차에 실려서 북한 내로 들어왔다는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중립국감시위원회는 군사력 증강을 확실히 차단하기 위한 출입항의 시찰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폴란드와 체코 측 위원들은 우리 영도 안에 있는 그들의 주둔지로부터 파괴, 전복, 간첩 활동의 목적으로 남한 전역에 걸친 비밀 요원들의 조직망을 수립한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우리 영토로부터 그들이 철수하기를 줄곧 요구하였으나 그들은 여기에 머물면서 우리의 자유 정부를 허물기 위한 노력을 날마다 지속하고 있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늦어도 1954년 10월 28일 이전에 한국의 평화적 재통일을 협의하기 위한 정치회담을 개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54년 4월 말까지 그러한 회담은 전혀 개최되지 않았다.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 전역에 대한 지배력 확장을 보장하는 조건들 외엔, 한국의 재통일을 위한 그 어떤 제안도 수용하지 않았다.
● 정전협정에 따르면, 전투의 종식은 한국 전체를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재통일된 국가”로 복원한다는 국제연합 정책의 최종적 완수로 귀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공산주의자들은 정전협정을 그들이 강력히 염원하는 한국 전체의 공산화에 이르기 위한 디딤돌로 악용해 왔다
이 모든 사항이 내가 왜 공산주의자와의 “평화적 공존” 발상을 거부하는지 말해준다. 무슨 약속을 맺든 그들은 즉시 위반하기 시작한다. 어떤 계획에 합의하든 그들은 즉각 추가적 정복을 위해서 정반대의 프로그램으로 그 합의안을 왜곡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존”이란 전쟁도 없이, 자기편의 희생도 없이 자유세계가 그들 손아귀에 투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공존이란 정복을 지속하는 그들 나름의 수법에 보험을 드는 것임이 확실하지만, 공존이 민주국가들의 지도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자유세계의 지도자들에게 공존이란 “긴장 완화”를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그 문구는 경각심의 이완 외에 무슨 의미겠는가? 군비축소를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민주국가들이 무장을 해제하는 동안 소련은 기습 정복을 위한 최신식 무기 증강을 계속하리란 게 자명하지 않은가?
반혁명 운동? (Counter-Revolution?)
민주국가들은 공존의 허상 위에서 그들 자신이 이념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과연 어떤 수단으로 내가 요약한 다섯 형태의 침략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작정인가? 그리고 민주국가들은 그들 나름의 이념적 반혁명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과연 어떠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끝으로, 만약 자유 국가들이 공존을 목표로 받아들인다면, 이미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 뒤에서 신음하고 있을 9억 명의 사람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점진적 투항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대신 무엇을 할 것이냐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자유 진영의 국가와 국민이 기본적 안보와 자유가 위협당할 때면 언제나 늘 해왔던 일을 하겠다. 나는 반격해서 싸울 것이고,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담대한 결의로 싸울 것이다.
이는 예방 전쟁의 옹호가 아니다. 나는 러시아든 붉은 중국이든 전 지구적 열전(熱戰)을 수행할 의지도 능력도 이제 없다고 생각한다. 붉은 중국은 한국에서 싸울 때 처음 몇 달간은 제법 사나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유엔이 붉은 중국의 기지에 대한 전략적 폭격을 자제한 탓에 한 손은 묶인 채로 싸우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런 불리한 조건에서도 유엔군과 한국군은 곧 공산군이 지구력 없는 종이호랑이임을 폭로해 버렸다.
나의 냉철한 판단에 따르면, 자유 진영은 공산주의자들이 얄타, 포츠담, 판문점에서 이미 맺은 약속을 지키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이미 맺은 약속을 계속 깨고 있는 지금 또 그들과 새로운 약속을 더 맺어선 안 된다고 확신한다.
소련 제국주의의 본래 계획은 점진주의적 정복이다. 작고 약한 지역은 서방의 저항 없이 복속당해 왔다. 더 큰 규모의 중국 정복은 능란한 사안 흐리기를 통해서 이뤄졌다. 더 위험한 것은 전면적으로 항복하기엔 너무나 오만한 국가들의 성채 내부에서 저항을 약화하고 무력화하는 소련식 방법이다.
세계의 절반 (Half the World)
이 과정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진행되어서 러시아가 오늘날 세계의 절반이 훨씬 넘는 지역을 전면적으로 지배하거나 절반 정도 지배하고 있다고 하면정확할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한 생애도 채 못 돼 달성되었거니와 그 대부분은 불과 10년 안에 이루어졌다.
17년 전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1869-1940; 영 수상, 1937-40)은 뮌헨에서 돌아올 때 스스로 자랑스럽게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선언한 문서를 들고 왔다(나치 독일의 요구를 들어주고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명예로운 평화(peace with honour)”가 얻어진다고 믿는 유화정책을 추구한 결과 1938.9.30.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이에 체결된 뮌헨협정 문서). 그가 얼마나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는지 우리는 이제 안다. 우리는 그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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