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vs 바이든, 2024년 美대선의 ‘굿즈 전쟁’[글로벌 포커스]
후보들 선거철 굿즈 출시에 열중
트럼프, 머그샷도 옷으로 만들고… 사인 운동화는 9000달러에 낙찰
바이든은 ‘부캐’ 활용한 상품 제작… 굿즈 판매액 절반 차지하며 인기
선거 자금-광고판 기능하지만… 부동층엔 효과 없고 상업화 우려
미국 시계 판매 기업 ‘럭셔리 바자’의 로만 샤프 최고경영자(CEO·49)는 최근 경매로 황금색 ‘네버 서렌더(Never Surrender·절대 항복하지 않는) 하이톱’ 스니커즈를 9000달러(약 1170만 원)에 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신발 박람회 ‘스니커즈콘’에서 선보인 굿즈다.
샤프 씨가 구입한 신발의 판매가는 399달러(약 53만 원). 당시 트럼프 캠프 측은 이 신발 1000켤레를 선보였다. 이 중 10켤레에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담겼다.
샤프 씨가 산 신발은 이 10켤레 중 한 켤레로 오른쪽 운동화에 사인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인 값이 1000만 원을 넘는 셈이다. 스스로를 ‘트럼프 지지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샤프 씨는 같은 달 24일 뉴욕타임스(NYT)에 “그 돈이 아깝지 않다”며 기뻐했다.
개별 굿즈 상품의 가격은 10∼50달러 수준으로 비싸지 않다. 그러나 미 전역의 지지자가 사들인 합계 판매 수익은 수백만 달러, 수천만 달러에 육박해 확실한 대선 자금 수입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굿즈를 착용하고 거리 곳곳을 활보하는 구매자 한 명 한 명은 ‘걸어다니는 광고판’ 겸 ‘비공식적 선거 유세원’이 된다. 대선 때마다 주요 주자들이 굿즈 판매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동시에 ‘쩐의 전쟁’ 성격이 강한 미 대선의 상업화를 더 부추긴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 턱받이, 병따개, 골프공… “모든 것을 판다”
미 대선의 ‘굿즈 전쟁’은 2008년부터 본격화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티셔츠에 각각 자신을 상징하는 슬로건을 적어 판매했다.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은 티셔츠에 “여자가 있을 곳은 하우스”라고 새겼다. ‘백악관’과 ‘집’이 모두 영어로 ‘하우스’로 불린다는 점을 노려 여성들을 폄하하는 표현을 자신의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구호로 역이용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과 ‘록앤드롤’을 합친 ‘버락 앤드 롤’이 적힌 티셔츠를 팔았다. 오바마 캠프는 이 외에도 ‘오자마’라 불리는 파자마, 셔츠, 신발 등까지 제작해 3000만 달러를 벌었다. 2012년 대선 때도 굿즈로 4000만 달러를 모았다. 당시 오바마 캠프에 모인 소액 후원금의 8%에 달했다.
샌더스 캠프와 트럼프 캠프 모두 굿즈 판매를 적극 활용했지만 그 목적은 완전히 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평소에도 소수 억만장자와 몇몇 대기업이 자본을 통해 선거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그래서 그는 거액 기부를 받는 대신 굿즈를 일종의 ‘풀뿌리 모금’ 방법으로 활용했다. 2016년 샌더스 의원의 후원금 중 6.3%인 1280만 달러가 굿즈 판매 수입이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선거 캠프와 별도로 가족 회사 트럼프그룹에도 굿즈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100달러가 넘는 폴로 셔츠, 고급 목욕가운 등 일반 굿즈보다 비싼 품목을 주로 팔았다. 반대파들은 “선거를 통해 백화점보다 더 높은 이윤을 남기려 한다”고 비판했지만 지지자들은 “선거 굿즈의 수준도 올려놨다”고 맞섰다.
● 트럼프, 사법 위험도 돈벌이 이용
실제 샤프 씨가 산 스니커즈의 출시일 또한 재판과 많은 관련이 있다. 출시일 하루 전날인 지난달 1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가족 회사 트럼프그룹을 운영하면서 대출을 받기 위해 보유 자산을 부풀렸다는 의혹으로 3억5500만 달러(약 4700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트럼프 스니커즈’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올 8월 출시 예정인 두 종류의 운동화 ‘티-레드웨이브(T-red wave)’와 ‘포터스 45(Potus 45)’의 예약 주문도 받고 있다. 가격은 199달러로 두 신발은 같은 디자인에 각각 빨간색과 흰색으로 색만 다르다.
첫 번째 신발 명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 앞글자 ‘T’와 소속 공화당 상징색인 ‘red’(빨간색)를 결합했다. 두 번째 신발은 미 대통령(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의 머리글자 ‘포터스(POTUS)’와 그가 45대 미 대통령이었음을 나타내는 숫자 ‘45’를 사용했다. 이 웹사이트는 두 운동화를 두고 “용기와 신념으로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는 미국인을 위한 대담한 선언”이라는 거창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굿즈 판매 웹사이트에서도 각종 의류, 양초, 탁구채, 선박 깃발, 쿠키 등을 팔고 있다.
그는 2020년 대선 당시 자신이 패한 조지아주의 국무장관에게 전화로 “선거 결과를 뒤집을 방안을 찾아내라”고 압박한 혐의로 지난해 8월 3번째 형사 기소를 당했다. 직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풀턴카운티 구치소에 20분간 수감되면서 ‘머그샷’을 찍었고 이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풀려나자마자 이 머그샷을 포스터로 만들고, 머그컵과 티셔츠 등에 담아 판매했다. 포스터는 19.99달러, 머그컵은 25달러, 티셔츠는 29.99달러였지만 해당 굿즈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무려 710만 달러(약 94억 원)를 모았다.
● 바이든, 비방 구호를 굿즈로 승화
다크 브랜던은 당초 공화당원들이 바이든 대통령을 비방할 때 쓰는 구호 “레츠 고 브랜던(Let’s Go Brandon)”을 비틀어 생긴 캐릭터다. 2022년 초 온라인에서 바이든의 눈에서 적색 레이저 빔을 내쏘는 사진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현직 대통령인 만큼 백악관 기념품점에서도 그에 관한 다양한 굿즈를 찾아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을 본떠 만든 머리가 흔들리는 작은 인형,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티셔츠 등이 각각 39.99달러, 21.99달러에 팔리고 있다.
바이든 캠프 측은 2020년 대선 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발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8달러짜리 손소독제도 판매했다.
당시 상대방 후보를 조롱하는 굿즈도 선보였다.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가 민주당 바이든 후보 측 해리스 부통령 후보와 논쟁할 때 펜스 부통령의 흰머리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이 일이 큰 화제를 모으자 바이든 캠프 측은 즉각 ‘파리보다 진실’이란 이름의 10달러짜리 파리채를 제작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주황색 파리채를 든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나의 대선 캠페인이 계속 날 수 있도록 5달러를 기부해 달라”는 글도 올렸다. ‘파리’와 ‘날다’의 영어가 모두 ‘플라이(fly)’라는 점을 노린 언어유희였다.
● 굿즈 판매로 선거 결과도 예측?
굿즈 판매량을 통해 선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굿즈 판매가 활발한 아이돌 그룹 내에서도 포토카드가 많이 팔리는 멤버의 인기 순위가 높은 것처럼 주요 대선 후보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미 온라인 소매업체 ‘카페 프레스’ 집계에 따르면 2008년 대선 당시 주자별 굿즈 주문 제작 비율에서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클린턴 전 장관을 능가했다. 경선 초반만 해도 무명의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보다 전직 대통령 부인인 클린턴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굿즈는 오바마의 승리를 예견했던 셈이다.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의 판매량이 클린턴 전 장관의 티셔츠보다 많았다.
다만 굿즈가 기존 지지층의 결집력을 강화할 뿐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명 선거 전략가 J 마크 파월은 AP통신에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그려진 컵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선물을 준다고 해서 해당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굿즈는 이미 지지하는 후보가 있는 유권자의 표심을 강화할 때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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