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정해진 미래'는 없다

김동욱 입력 2024. 3. 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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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문제서 '결정론적 사고' 만연
데이터 변화 예측할 수 있기 때문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는 인식이
현재의 판단과 결정을 구속
어떤 정책 쓰냐에 미래도 바뀌어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직전 독일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초조했다. ‘정해진 미래’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1913년 말 기준으로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가상적국인 영국, 프랑스, 벨기에보다 192개 대대가 부족했다. 더 큰 문제는 동부전선이었다. 전운이 고조되면서 독일은 평시 전력을 13만6000명에서 89만 명으로 확대했지만, 1914년 말 조성될 예정이었던 러시아의 상비군 규모는 무려 150만 명에 달했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병사까지 합쳐봐도 러시아보다 30만 명이나 부족했다. 러시아는 1916~1917년 병력을 200만 명 규모로 키울 계획이었다. 1904년 26만982명에 불과하던 프랑스·러시아 대 독일·오스트리아 간 병력 차는 1914년 5월이면 100만 명 수준으로 벌어질 것으로 추산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에 불리해 보였다. 러시아의 거대한 인구 규모와 높은 출생률에서 기인하는 군인 수 차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독일의 전략적 대처는 단순했다.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결판을 내는 것. 다른 판단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이에 따라 독일 지도부는 ‘긴장’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는 시점에 주저 없이 개전을 결정했다. 미래가 결정됐다는 사고에선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로 결심한 이들의 생각처럼 정말로 미래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다른 분야와 달리 인구 문제에선 유독 ‘결정론적 사고’가 힘을 얻는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식량 생산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1798)부터 이런 식의 사고를 드러낸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됐던 이유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청년인구 부족에서 찾은 프랑스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 분석도 패턴은 비슷했다. 신생아 수 같은 데이터값이 구체적으로 주어지고, 20~30년간 일정한 경로를 따라가는 인구구조의 특성상 논리적·과학적으로 예상 결말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인구상(像)도 30년 전에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외견상 인과 관계도 너무나 명확하다. 1970년대 전반 출생자보다 20만 명가량 적은 1984~1990년 출생자의 경우, 남아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문제까지 겹치면서 산모 집단이 급격하게 축소됐다. 산아제한 정책에 남아선호 사상이 맞물리면서 이들이 성인이 된 2000년대 들어 출생률이 급락했다. 2002년 출생아 50만 명 선이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2017년 40만 명 선, 2020년 30만 명 선이 붕괴됐다. 2020년엔 전체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똑같은 논리로 오늘 만들어지는 인구구조는 30년 뒤의 미래를 결정할 기세다. 역대 최저인 0.65명을 기록한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2025년 초고령화 사회 진입, 2030년 ‘인구절벽’의 도래를 예고하는 절망적인 ‘신탁(神託)’이다. 50년 뒤엔 인구가 작년 말(5144만 명)보다 30%나 쪼그라드는(2072년 3622만 명) 상황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의 빈틈도 없어 보이는 인구 결정론도 그 논리를 살펴보면 의외로 허점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역대 최저인 23만 명의 출생아 수라는 비관적 통계는 아직은 20만 명대 신생아 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긍정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10년간만 20만 명대 출생을 유지하면 인구변화 충격에 대비할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1인 가구 확산으로 가구 수 증가가 이어지는 점도 인구 변화의 충격을 줄일 변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이라도 태어날 인구수가 조금만 달라져도 미래의 모습은 확연히 바뀔 수 있다. 현재 어떤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맬서스 이후 그 어떤 인구 관련 예언도 들어맞은 적이 없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보이더라도 제한된 과거 경험과 비좁은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재단한 탓이다.

다시 1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돌아가 보자. 각국의 인구 구조에 기반해 예상했던 병력 동원 규모와 실제는 차이가 컸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었던 독일은 대전 기간 1325만 명을 동원했고, 사람 수로 밀어붙일 것 같았던 러시아는 1200만 명을 전장에 투입했다. 미래는 정해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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