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대변화 반영한 진전된 통일 방안 나와야
━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에 ‘자유 통일’ 제시
━
북한의 ‘통일 부정 헌법’ 추진에 맞대응 성격
━
30년 된 ‘민족공동체 방안’ 업그레이드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이 3·1운동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취임사 때처럼 ‘자유’를 부각하면서 ‘통일이 독립의 완성’이란 의미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면서 “모든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해 3·1절 윤 대통령은 “일본은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올해도 일본에 대한 우호적 메시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한·일 관계에 대해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자유·인권·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1절 기념사인데도 올해 기념사의 방점은 일본보다 북한 문제와 통일에 찍혔다. 3·1절 기념사에서 대통령이 한·일 관계보다 남북 관계를 더 앞세우고, 통일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통일 화두를 작심한 듯 정면으로 제기한 배경엔 북한의 돌출 행태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연말과 올 연초 노동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등에서 남북한을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다. 이번 기념사에는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담겨 있다. 북한 정권은 세습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해 남북통일을 부정하고 헌법 개정까지 추진 중이지만, 우리는 일관되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이 통일의 주도 세력임을 자임하고 통일 논의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강조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계기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통일 비전 마련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으로 자리 잡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는 기존의 통일관을 다듬어 발전시키고, 통일관과 통일 비전을 더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한은 이미 각자의 통일 방안을 갖고 있다. 한국은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를 계승해 1994년 8·15 경축사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 방안으로 굳어졌다. 반면 북한은 줄곧 ‘고려 연방제’를 주장해왔다.
최근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및 잦은 전쟁 위협으로 통일이 더 멀어졌다는 탄식과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여론이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이런 시점에 윤 대통령이 통일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가치 천명이나 통일 의지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논리에는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이나 일본과 직거래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한국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정교한 방안이 필요하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남북관계나 시대 변화를 반영한 업그레이드된 통일 방안이 나올 때가 됐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도출이 통일부의 역할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북 긴장 완화와 통일 문제 관심 제고로 이어지길 바란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