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의외의 대답
의외의 대답
천양희
내가 세상에 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말보다 침묵으로 말하겠다
강변에 나가 앉아
물새야 왜 우느냐 물어보았던 것
나는 왜 생겨났나 생각해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흘러가는 말로 다시 말하겠다
강가에 서서
그냥 미소 짓고 답하지 않은 노을을 오래 바라보았던 것
나는 왜 사나 알아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제일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거듭 묻는다면
사람의 말로 거듭 말하겠다
무릎 꿇고 앉아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
나는 왜 사람인가 물어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끝까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끝까지 묻는다면
마지막 남은 나의 말로 끝까지 말하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 살려주고 떠나는 것
다시는 몸 받지 않겠다며
나를 잃는 것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여럿 가운데 첫째가는 것. ‘제일’이라는 말이 가진 뜻입니다. ‘가장’이라는 낱말의 뜻도 다르지 않고요. 하지만 무엇 하나만을 꼽아야 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의 키는 서로 비슷하니까요. 그리하여 제일이나 가장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세상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그렇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나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제일 어려운 문제가 여럿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사실은 시간과 함께 나의 삶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조금 느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결국 나의 제일 말갛고 가장 분명한 것만을 드러내 줄 것입니다.
박준 시인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