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정상 아닌… 문명 발전 견인한 자폐인
인류 ‘체계화 메커니즘’ 진화 동력
에디슨·아인슈타인·앤디 워홀…
‘체계화’ 고도로 발달된 경향 보여
일반인과 전혀 다른 뇌 운영 체제
패턴 시커/사이먼 배런코언/강병철 옮김/디플롯/2만4800원
알은 네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말문이 트인 뒤에는 “왜, 왜, 왜”를 달고 살았다. 특이한 점은 또 있었다. 알은 토머스 그레이의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낭송했다. 평생 그랬다.
타고난 ‘패턴 탐구자’이자 미국 특허만 1093건을 보유한 발명가 토머스 앨바 에디슨의 어린 시절 얘기다. 자폐 성향을 가진 에디슨은 어릴 때부터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고, 주어진 답을 직접 검증해서 납득해야 성이 풀렸다. 또 자신만의 규칙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책 ‘패턴 시커’는 에디슨처럼 ‘체계화 메커니즘’이 고도로 발달한 이들이 문명 발전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체계화 메커니즘이야말로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핵심 무기라고 말한다. 주목할 점은 체계화 메커니즘이 발달한 이들에게서 자폐 성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좀 더 높으며,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발달정신병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자폐인 중 일부는 새로운 패턴을 파악하는 재능이 있기에 뛰어난 발명가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여러 근거를 들어 논증한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체계화 메커니즘’은 ‘만일-그리고-그렇다면’으로 요약된다. 인류가 물체, 사건, 정보를 ‘만일-그리고-그렇다면’이라는 패턴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문명이 발달했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만일 씨앗이 흙 속에 있다면, 그리고 흙이 축축하다면, 그렇다면 씨앗이 싹튼다.’ ‘만일 사과를 누군가 잡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중력이 있다면, 그렇다면 사과는 지구를 향해 떨어질 것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뇌 속에 ‘만일-그리고-그렇다면’이라는 엔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동물은 물론 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에게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체계화 메커니즘은 7만∼10만년 전 인간이 복잡한 도구들을 발명하는 동력이 됐고, 결국 지구 정복을 가능하게 했다.
반대로 체계화에 능한 이들에게도 자폐 성향이 많을까. 케임브리지대학이 1000명이 넘는 학생에게 자폐 스펙트럼 지수(AQ) 검사를 한 결과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 학생들이 인문학 전공생보다 자폐 특성을 많이 나타냈다.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인 에인트호번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3개 도시에서 어린이 6만여명을 조사해 보니 에인트호번에서는 어린이 1만명 중 229명이 자폐 진단을 받았다. 다른 두 도시에서는 이 수치가 각각 84명, 57명에 그쳤다.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 사람들은 종종 자폐인으로 여겨졌다. 예술가 앤디 워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헨리 캐번디시는 자폐인으로 알려졌다. 실제 ‘체계화 메커니즘’에 능한 에디슨은 공감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일례로 그는 콘크리트로 만든 집을 설계한 후 대량생산이 가능한 콘크리트 가구로 집을 채웠다. 에디슨은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팔아 보려고 7년이나 애썼다.
물론 고도의 체계화를 추구하는 것과 자폐가 동의어는 아니다.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다고 자동으로 뛰어난 발명가나 음악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천재든 자폐인이든 ‘만일-그리고-그렇다면’ 패턴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데 능하기에, 획기적인 결과를 발견해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논증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인간의 뇌 유형은 다양하다’이다. 자폐인의 마음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적 뇌 유형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폐인을 장애나 비정상이 아닌 ‘전혀 다른 뇌 운영체제’를 가진 이들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잠재력을 피우려면 환경이 중요하다. 덴마크의 한 자폐인은 “우리는 바닷물 속에 던져진 민물고기와 같다”며 “우리는 민물에 넣어 주면 잘살아가고 번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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