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노래 속 나발니 영면…상당수 교회 장례식 거부

홍석재 기자 2024. 3. 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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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 수백미터 장사진…생중계 장례식 40만명 이상 시청
1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관을 장례업체 직원들이 옮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달 옥중 돌연사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생전 자신이 살던 모스크바 마리노의 한 교회에 안치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리며 민주주의의 변화 바람을 불렀던 그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웨이’가 울려퍼지며 수천명의 인파에 둘러 싸인채 영면에 들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1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시베리아 제3교도소(IK-3)에 의해 사망이 발표된 지 정확히 2주 만에 모스크바의 한 공동묘지에 안치됐다”고 전했다. 나발니의 장례식은 이날 오후 2시께 생전에 그가 살던 모스크바 마리노 지구의 '마더 오브 갓 아이콘 교회'에서 열렸다. 이곳은 나발니가 지난 2020년 의문의 독극물 중독 사건 뒤,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러시아로 다시 귀국해 공안 당국에 체포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장례식에서 그는 관 속에서 붉은색과 흰색 꽃을 몸에 두른 채 안식을 취했다. 이어 나발니의 주검은 장지인 보리소프 공동 묘지로 옮겨졌다. 나발니의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가 흘러나왔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보도했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와 자녀들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될 상황 등을 우려해 이날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나발나야는 동영상을 통해 “(결혼 생활을 했던) 26년간의 절대적인 행복에 감사한다. 항상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줬으며, 감옥에서 조차 나를 웃게 해줘서 고맙다"며 “남은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1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고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열리는 한 교회 앞을 러시아 진압 경찰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날 오후 장례식에 앞서 나발니 지지자들의 집단 행동 등을 우려한 러시아 경찰 당국이 일찌감치 대규모 경찰들을 배치하며 무거운 긴장이 감돌았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던 야당 지도자의 장례식장과 묘지 주변에 진압 경찰과 보안 트럭이 배치됐고, 인권 단체들은 애도객들에게 체포와 방해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에이피(AP) 통신도 “러시아 당국이 인근 지하철역에서 교회로 가는 길에 군중 통제용 바리케이트를 설치했고, 진압 경찰을 대규모로 배치했다”고 전했다.

그래도 이날 장례식이 열린 교회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빨간 꽃을 든 추모객들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장사진을 이뤘다. 장례식장 진입이 막힌 일부 시민들은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거나, 나발니의 별명인 “료하” 등을 외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부 참석자들은 나발니의 관을 운구하며 장지로 행진하면서 “전쟁 반대”,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지만 장례식이 열리기 까지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시엔엔은 “모스크바의 여러 교회가 나발니의 장례식 개최를 거부했고, 다른 많은 장소들도 나발니의 이름이 거론되자 바쁘다거나 예약을 거부했다”며 “일부는 나발니 관련 업무를 하는 걸 (당국이) 금지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일부는 장례식을 위해 묘지를 파낼 인부가 없다거나, 영구차 섭외하는 데 곤란함을 겪었다는 관계자 증언도 전해졌다. 시엔엔은 나발니 쪽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운전기사들이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나발니의 주검을 아무 데도 가져가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장례식은 다행히 대규모 충돌없이 치러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당국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장례 예배가 진행됐고, 장례식이 시작된 교회 주변에는 경찰이 많이 배치되었지만 광범위한 체포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며 “인터넷 등을 통해 생중계된 장례식 동영상을 적어도 40만명 이상이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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