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소녀가 전하는 위로 ‘바람 바람아’
3년 전 아홉 살 소녀가 불렀던 노래 ‘바람길’을 잊지 못한다. 원래 장윤정이 부른 곡이었으나 앳된 ‘판소리 신동’ 김태연은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전혀 다른 빛깔로 빚어냈다.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이 길/ 걷다가 울다가 서러워서 웃는다’로 시작하는 노래는 ‘스치듯 지나는 바람의 기억보다 더/ 에일 듯 시리운 텅 빈 내 가슴’으로 이어진다. 때로 슬픔이 넘치면 차라리 웃는다고 했다. 그 시린 서러움에 시청자도 먹먹해졌다.
▶가수의 삶을 베껴서 노래가 되기도 하고, 또 가수의 삶이 노랫말을 따라가기도 한다는데 어른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아이의 목소리가 그토록 어른 애간장을 녹일 만큼 애달플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방비로 있던 심사위원이 눈물을 쏟았고,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심사위원 장윤정은 딸 같은 김태연에게 곡 해석과 창법 모두에서 “네가 다 옳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태연은 당시로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제 미스트롯3에서 톱7 결정전이 펼쳐졌는데, 열다섯 소녀 정서주가 1등을 차지하며 심사위원을 또 울려놓았다. 정서주는 첫선 신곡 ‘바람 바람아’를 들고 나왔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낯선 바람 바람아/ 덧없는 한 세상 답답한 마음을/ 너는 달래주려나’ 하는 노랫말이 잔잔하게 흘렀다. 연습 때 정서주가 아빠에게 전화로 여쭙자 아빠는 “기댈 곳도 없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노래”라면서 “담담하게” 부르라고 말해준다.
▶외친다고 감정이 따라오는 건 아니다. 외려 글도 노래도 나직하고 담담해야 공감의 울림통이 커진다. ‘세상에 지쳐 울고 싶은 날/ 나는 바람이 되어/ 한없이 위로가 되는 당신 곁으로 가서/ 참아온 눈물을 쏟고 싶구나’. ‘아모르 파티’의 김연자가 심사위원이었는데 휴지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시작부터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눈물이 계속 나올 것 같아서, 마스터로서 자격이 없네요, 냉정하게 들어야 되는데….”
▶김연자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것이 미스트롯의 힘일까. 지난 삶의 괴로웠던 순간을 다시 끄집어 올려서 따뜻하게 치유해준다. 중견 방송인 이경규는 “선풍기가 시원하지 않은 것은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때문이며, 자연 바람이 시원한 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람을 소재 삼은 노래가 수백 곡이 넘겠지만 어린 소녀들 노래에서 크게 위로받는 것은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산들바람이기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한 요즘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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