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법 거부하는 자가 범인”“해병대 정신 지켰을 뿐”···3·1절 대통령실 앞으로 향한 해병대 예비역들
“대통령님, 채 상병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 아니겠습니까? 저희도 동료 시민일 수 있도록 특검법을 통과시켜주십시오!”
꽃샘추위가 들이닥친 1일 오후 2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해병대 예비역들이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모여들었다. 해병 154기부터 1158기까지 예비역 50명가량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을 목적지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북 예천에서 지난해 7월 수해복구 작업 도중 사망한 채모 상병의 순직과 수사외압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홍대입구역에서 시작된 해병대예비역연대의 행진은 신촌로터리와 이대역 앞, 서울역을 거쳐 대통령실 앞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채상병 특검법 통과’ 등의 문구가 적힌 붉은 깃발과 현수막, 태극기를 들고 행진에 나섰다. 낮 기온도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전투복이나 티셔츠만 입고 행진에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해병대’ 글씨가 적힌 빨간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던 한 예비역은 “강인한 해병대 정신을 보여주려고 반팔을 입었다”고 했다.
행진 내내 이들은 “오와 열”을 외쳤고 군가 ‘영원한 해병’을 부르며 발을 맞추는 등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다. 행진 중에는 “채상병 특검법 통과시켜라”,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하라” 등의 구호도 들려왔다.
출발지인 홍대 젊음의 거리와 신촌로터리에서는 시민들을 상대로 호소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여러분과 같은 21살에 청춘이 죽었다”며 “그런데 권력은 덮으려만 한다”고 외쳤다. 해병 1043기 김규현씨는 “채 상병도 휴가를 갔다면, 전역을 했다면 친구들과 이 거리를 걸었을 것”이라며 “진급과 출세에 눈이 먼 자들 때문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라고 했다.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법 #안되면 #될때까지’ 등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해달라는 호소도 나왔다.
집회와 행진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김해에서 올라왔다는 해병 1015기 전태욱씨(39)는 “제가 복무할 때도 해병대에서 죽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라면서 “채 상병 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군대는 사건을 묻는데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군 인권 개선을 위해 집회에 꼭 참여하려고 왔다”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822기 전병흔씨는 “평일에는 택배 일을 하느라 모임에 못 나갔는데 3·1절인 오늘만큼은 꼭 오고 싶었다”라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예비역 김모씨도 “오늘만큼은 안 왔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며 “한참 후배인 채 상병을 떠올리면 안타깝다”라고 했다.
진상규명 요구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태욱씨는 “세월호 때, 이태원참사 때 유족들을 정치적이라며 비난하던 게 또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저희가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박정훈 대령이 사익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며 해병대 정신인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날 행진에는 해병대 예비역이 아닌 시민들도 함께했다. 연세대 민주동문회가 오후 3시쯤 신촌에서 행진대열에 합류했다. 노성철 동문회장은 “해병대 출신뿐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의 호소를 들으며 발길을 멈추는 시민도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뉴스에서 봤는데 안됐더라”라고 말을 걸거나 행진대열을 향해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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