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기로에 선 지역균형 발전
지방축제, 산단조성도 지역 소멸 못 늦춰
'균형발전' 명분 실질 일치시킬 노력 시급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제 다 죽었다. 인구가 늘지 않으니 희망이 안 보인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도 지역에서는 맞지 않다.”
1,700억 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하루 평균 유료관람객이 100명 남짓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북의 한 체험형 테마공원을 최근 다녀온 기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체념이 묻어 나왔다. 1,700억 원은 이 테마공원을 조성한 기초단체 1년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이처럼 ‘소멸위험지역’에서 전하는 현장 분위기는 어둡고, 때로 묵시론적이다. 아이 울음소리 끊긴 마을은 노인들만 지키고,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지자체는 중학교를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까지 입도선매처럼 데려온다. 인구가 줄어들고 자립기반이 붕괴된 지역에는 낙후, 빈곤, 박탈감 같은 단어가 낯설지 않다.
2000년부터 2021년 사이 수도권 인구가 395만 명 증가하는 동안, 비수도권 인구는 4만 명이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직격탄을 맞은 비수도권의 현실은 건조한 통계 숫자보다 더 암울하다. 비수도권의 중소도시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 지역의 행정가들은 인구를 늘리려 백방으로 정책을 고민해 왔다. 몇 년 전 한 도시계획 전문가가 세밀하게 분석했듯 축제 개최 등 관광자원 개발, 산업단지 조성, 카지노 유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필사적이다. 아무리 동물학대 논란이 커져도 강원 화천군이 ‘산천어 축제’를 포기하거나 축소할 리 만무하다. 다만 성공의 가능성은 낮다. 화천의 사례를 보고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비슷비슷한 축제를 열지만 대부분 한산하고 지역 인구의 유입이나 증가로 선순환되지 않는다. 지자체들이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조성하는 산업단지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세금감면 혜택, 심지어 미분양 용지를 대부분 지자체가 떠안는 조건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지만 목표 숫자의 절반을 못 채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산업단지에 땅을 분양받은 뒤 시세차익을 노려 공장도 짓지 않고 매각하는 ‘먹튀 기업’들이 나와도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잇따라 내놓는다. 지난해 2분기 조성을 마친 산업단지 중 분양률 100%를 채우지 못한 곳은 152곳이었고 이 중 93%가 지방산업단지였다.
저출산 대책으로 최근 15년여간 연평균 20조 원씩을 투입하고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출산율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모든 지역을 고루 살려 보겠다는 ‘균형발전’의 대의명분과 실효성 사이에 괴리가 드러난 지 오래다. 국가 예산이 화수분이 아닌 이상, 안타깝지만 지금 인구위기에 빠진 지방도시들의 쇠락을 모두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직 지역 정치인들만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2040년이면 대략 30%의 지자체가 소멸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진단은 이제 충격적이지도 않다. 중앙정부 의존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이들의 체질을 바꾸지 않을 경우 조만간 국가재정의 블랙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수도권 주민들 세금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측이다.
수도권 광역단체부터 비수도권의 기초단체까지 모두 살리기 위해 나눠주기식 예산을 고수할 것인지, 이도저도 안 되니 과거 발전경로처럼 수도권 투자에 집중할 것인지, 포기할 곳은 포기하고 지역마다 거점도시를 만들고 여기에만 집중할 것인지 등은 이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정치권이 할 일은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갈등과 비용을 예측하고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대타협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왕구 지역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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