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타투

2024. 3. 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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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

엄마 우리 같이 타투해요.

그래 타투하자.

우리는 타투할 내용을 정하고 '취업 등 어떠한 불이익에도 타투이스트는 책임이 없다'는 곳에 각자 사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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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 3월이 되기 전에 짐을 쌌다. 기숙사 방이 비었다며 기숙사로 가버렸다. 나는 벌써 가느냐고 아쉽게 말했지만 녀석은 수학여행을 가듯 갔다. 고3에서, 엄마인 나에게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기숙사로 간 후 아이는 연락이 없었다. 내 품에서 날아가버렸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톡을 하면 'ㅇㅇ' '네'란 답이 왔다.

카톡 사진을 보니 아이는 빨간색으로 염색을 했다. 어느 날은 노란색으로, 보라색으로 심지어 회색으로 머리색이 변했다. 로션만 바르던 아이가 입술도 빨갛게 칠했다. 카톡 사진을 보니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 내가 톡을 보내면 아이는 "엄마, 카톡 보낼 때 두 줄로 줄여서 보내주세요. 너무 바빠요"라고 한다. 나는 어이없었다. 동네에서 딸 친구의 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주말이라 따님이 집에 왔나 봐요?" 하며 길에서 내 딸아이를 봤다고 했다. 녀석이 이 동네에 와서도 본가에는 오지 않았다. 딸 친구의 엄마와 요즘 아이들은 정이 없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등등 서로 아이들 흉을 보고 헤어졌다.

아이한테 왜 이 동네에 와서 본가에는 오지 않았느냐고 톡을 했다. 아이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ㅋㅋ' 카톡으로 웃었다. 바빠서 그렇다고 했다.

아이는 여름방학이 되어도 본가에 오지 않았다. 동아리에서 한 달 동안 합숙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어디로 간다고 했다. 자신은 장구도 치고 상모도 돌리고 징도 쳐야 한다면서.

연락 안 하던 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새벽 한 시다. "엄마 기숙사 문이 안 열려요. 안면인식을 못 해요, 기계가." 나는 거기에 "수위아저씨는 안 계시냐. 일찍 다녀야지. 술 먹었냐…"라고 했다. 아이는 기계 잘못이라고 했다. 교복 사진과 현재 얼굴을 기계가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화장, 염색, 술 때문에 빨개진 얼굴, 나는 세수하면 인식할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하며 말했다.

엄마 우리 같이 타투해요. 고삐 풀린 망아지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목소리로 고삐 풀린 망아지에게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그래 타투하자. 며칠 후 날짜와 시간을 톡으로 알려왔다. 홍대입구 몇 번 출구로 오라고 장소도 톡으로 왔다. 우리는 타투할 내용을 정하고 '취업 등 어떠한 불이익에도 타투이스트는 책임이 없다'는 곳에 각자 사인을 했다. 타투이스트는 손가락 끝이 뚫린 장갑을 끼고 바늘로 글을 새겼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딸로'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엄마로'라고 왼쪽 종아리 안쪽에 길게 영어로 타투했다. 나와 딸은 종아리를 붙이고 사진도 찍었다. 타투 후에 바르는 연고를 하나씩 샀다. 아이는 꼭 다음 '생'에도 엄마와 딸로 만나자고 했다. 엄마 너무 작다. 언제 이렇게 작아졌어. 네가 큰 거다, 얘. 아이는 손바닥을 펴 나에게 손을 흔들며 갔다. 아이가 사람에 묻혀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했다. 점점 작아지더니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가며 점점 몸통이 없어지더니 머리만 보이다가 사라졌다. 나는 아이가 한 번쯤 뒤돌아볼 줄 알았다. 그래서 계속 서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서 독립하는 중이다. 내가 문제다. 나도 아이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뿌듯한 슬픔과 독립이 육아의 완성이라고 나 자신에게 혼잣말하고 있었다.

[권명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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