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계열사’ 팔고 ‘뜬금 제조업’ 뛰어든 기업...베트남 경제의 미래 달렸다는데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4. 3. 1. 16: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빈패스트의 SUV 모델인 VF9. <VN익스프레스>
[신짜오 베트남 - 284] 베트남 전기차 제조업체 빈패스트는 단순한 사기업 이상의 의미를 베트남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란 국가가 제조업으로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나라인지를 가늠하는 베트남 국가차원의 승부수라고 봐야 합니다.

빈패스트는 원래 내수 위주의 기업이었습니다. 다각도로 사업을 확대해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렸지만 그건 반쪽자리 명성이었습니다. 빈그룹이 사세를 크게 불린 건 빈홈즈를 내세운 건설 분야였습니다. 유통(빈마트) 학교(빈스쿨) 레저(빈펄) 병원(빈멕국제병원) 등으로 이어지는 사업다각화를 축으로 빈그룹은 베트남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사실 큰 야심이 없었다면 이대로도 좋았을 겁니다. 베트남에 살면서 빈그룹의 계열사를 거치지 않고 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기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빈그룹은 수년전부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제조업으로 그룹체질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 사업을 하겠다고 계열사 빈스마트를 만들더니, 이내 자동차 사업(빈패스트)로 영역을 확장합니다.

이 와중에 자금이 모자라니 알짜 중의 알짜 사업으로 평가받던 유통부문(빈마트)을 매각하는 강수까지 둡니다. 이후 두 개의 제조업을 동시에 끌고가기엔 힘이 부쳤는지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스마트폰 사업은 조기에 접어버리는 결단까지 내리고 맙니다.

팜느엇브엉 빈그룹 회장. <VN익스프레스>
현지에서는 이 결단에 빈그룹을 이끄는 팜느엇브엉 회장의 의중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베트남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국가의 체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제조업의 발전이 절실했습니다. 그동안 베트남 경제를 바닥에서 여기까지 끌고온 것은 중국의 ‘제조업 공장’ 지위를 지리적 이점과 비용적 이점을 통해 일부 베트남으로 끌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이제 인건비가 오를대로 올라 더 이상 전세계가 공장을 새로 짓기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수년전부터는 미국과 각을 세우고 다툼을 벌이고 있어 서구 국가 입장에서는 ‘차이나 리스크’가 커진 상황입니다. 또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중국을 바라보는 글로벌 기업의 불신은 커질대로 커졌습니다. 철저한 폐쇄 정책으로 공장 문을 순식간에 닫아거는 극단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떠나 공장을 옮길 부지를 찾는 입장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데다, 중국 대비 노동력이 훨씬 저렴해 라인을 뜯어 새로 공장을 세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베트남이 코로나 이후 애플 등 IT기업의 공장을 유치한 것에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지켜본 베트남 입장에서는 ‘글로벌 하청기업’ 이상의 단계가 절실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처럼 거대한 국가가 아닙니다. 인구 1억명 남짓으로 한창 경제개발에 한창인 개발도상국일 뿐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중국 공장을 폐쇄하는 것을 지켜본 베트남은 그것이 베트남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이 중국처럼 선진국 대기업을 상대로 큰소리를 뻥뻥치며 고자세로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글로벌 정세에 따라 하루아침에 해외 투자가 끊길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한 것입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이 과정에서 자체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방향의 경제정책은 더 확고해졌습니다. 빈그룹이 빈패스트를 설립한 것은 코로나 발발 이전이지만, 빈패스트를 완전히 전기차 위주 사업으로 구조조정하고 해외 상장과 글로벌 진출 꿈을 불태운 것은 코로나 발발 이후의 얘기입니다. 그 결과 빈패스트는 나스닥에도 상장하고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짓는 등 겉으로는 글로벌 대기업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빈패스트를 둘러싼 스토리에는 흠결이 많습니다. 지난해 4분기 빈패스트는 6억501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전분기 대비 3분기 손실이 3.4% 늘었습니다.

빈패스트는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공장 프로젝트에 2억1300만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공장이 풀로 돌아가면 여기서 나오는 연간 생산 능력이 최대 15만대에 달할 전망입니다. 손실을 보면서 투자를 늘리겠다는 빈패스트의 강한 의지는 인도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촤근 빈패스트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서 전기차 공장 착공식을 가졌습니다. 총 5억 달러를 투입해 연간 예상 생산능력은 연간 15만대 수준으로 올릴 전망입니다.

인도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입니다. 당초 빈패스트는 유럽과 미국에 공장을 짓고 ‘프리미엄’ 시장에서 곧바로 경쟁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빈패스트를 비싼 차로 포지셔닝하는 승부수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빈그룹은 압니다. 베트남에서 만든 신생브랜드 차량이 하이엔드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번 인도 공장 착공식은 베트남이 인도 시장 등 신흥시장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올라오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밝힌 것과 같습니다. 지난 1월 빈패스트가 인도 타밀나두주 정부와 양해각서(MOU) 체결을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빠르게 착공식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빈패스트는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에도 공장을 지어 동남아 일대를 커버할 예정입니다.

나스닥 상장 이후 한때 거품을 타고 주당 70달러 부근까지 올랐던 빈패스트 주가는 이제 주당 5달러 부근에서 거래됩니다. 앞으로 뚜렷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주가 상승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패스트는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입니다. 글로벌을 겨냥해 베트남이 선보인 첫 제조업 열차가 탈선한다면 ‘제 2의 빈패스트’가 나오기는 더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빈패스트의 행보에 관심이 더 쏠립니다. 베트남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빈패스트의 실패를 좌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