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ARS 경선 여론조사, 극단 정치 부추긴다 [쓴소리 곧은 소리]
모집단 작은 지역 경선에선 적극 응답층인 ‘개딸’들 의사가 과다 반영돼
(시사저널=권혁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오는 4월10일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은 전국의 각 지역구에서 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한창 심사를 진행 중이다. 여야 공천관리위원회는 다수의 지역구에서 단수공천을 했지만, 상당수 지역구에서는 후보들에게 경선을 요구했다. 여야 모두 당내 경선을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포함한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경선 여론조사에서 전화면접 방식보다 음성자동응답(ARS) 방식에 의존함에 따라 당내 시비가 끊이지 않고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경선 과정이 극단 정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선 여론조사 방식과 활용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히 요구된다.
과학적 통계조사 방법은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흐름을 파악하는 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수많은 대상을 모두 조사하는 수고를 줄이고 일부 표본에 대한 조사와 분석만으로 모집단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성 때문이다. 정치 과정에서 통계조사는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여론조사에 주로 활용된다. 언론을 통해 매일같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일기예보처럼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조사 과정을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내실 있게 조사 결과를 산출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조사 대상자 대다수는 여론조사에 쉽게 응하지 않기 때문에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의 편향되지 않은 표본을 확보하는 데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 CNN, 자동응답 조사 결과는 보도 안 해
조사원이 직접 조사 대상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하고 응답을 받는 전화면접은 조사원 고용에 따른 인건비가 많이 소요된다. 전화면접 대신 ARS를 사용할 경우 인건비를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응답률이 훨씬 낮다는 단점이 있다. 기계음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발간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여론조사 백서'에 따르면 전화면접 조사에 대한 응답 비율은 평균 15.9%지만 ARS 조사에 대한 응답 비율은 평균 5.4%에 불과했다. ARS 조사의 상당수는 1% 이하의 응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회조사에서 저조한 응답률은 조사에 참여한 표본이 통계적 표본오차를 넘어 특정한 편향을 지닐 위험성이 높다. 즉,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하는 심각한 통계적 결함을 초래할 수 있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 주요 여론조사 업체들이 가입한 한국조사협회는 2023년 10월22일 '정치 선거 전화 여론조사 기준'을 발표했다. 응답률이 7%에 미치지 못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핵심이다. 앞서 미국 CNN의 경우 2019년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조사원이 아닌 '자동녹음전화'를 이용한 여론조사 결과는 보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ARS 조사가 전화면접 조사보다 반드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ARS를 활용한 여론조사의 상당수에서 그 응답자가 인구통계학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선 승리를 위해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여론조사 과정에 부적절하게 개입함으로써 표본 왜곡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우다. 특히 지역구 경선처럼 모집단이 상대적으로 작고 95% 이상이 응답하지 않는 ARS 조사에서 특정 후보자에 의해 적극적 응답자가 동원된다면 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유권자보다 극단 세력 눈치 보는 정치 초래
실제로 일부 후보가 조직과 자금을 동원해 지역구 경선에서 ARS 조사에 자신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도록 사람을 동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응답률이 낮은 ARS 조사는 500명 혹은 1000명 등 일정 규모의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해 유권자에게 ARS 조사 전화를 시도한다. 유권자의 응답 거부가 반복되다 보면 특정 후보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이 ARS 전화를 받고 후보가 원하는 대로 조사에 응답할 확률이 높아진다. 후보들이 경선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응답자 동원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이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의 강성 지지층 '개딸' 등과 같은 일부 극렬 지지층이 ARS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는 현상이다. 극렬 지지층은 유권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하기 때문에 해당 집단의 극단적 정치 성향이 조사 결과에 과대하게 반영된다. 이러한 사유로 대다수 국회의원과 정치 지망생들은 소수 극렬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합리성과 상식을 벗어난 극단적 정치 지지층이 경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 과정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정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당이 여론조사에 의존해 공직선거 후보자를 공천하는 관행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당의 사명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을 유권자에게 제시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창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유권자를 만나 지역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정치인을 육성·발굴하는 일이 정당의 임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은 본연의 사명은 등한시한 채 오직 승리할 수 있는 후보만 찾으면 된다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지역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몰라도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방법이 바로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로 뽑힌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그들이 다음 선거에서 물갈이 대상이 되는 현상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에 의한 하향식 전략공천이 더 좋은 방법일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하향식 공천 역시 엉뚱한 인물을 공직 후보로 선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 파동이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 '친명횡재 비명횡사'처럼 지역구에 필요한 인물보다 당내 권력자에 충성하는 사람을 공천하는 행태를 익히 봐왔다. 결국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선출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진퇴양난의 정치 현실은 정당이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데 근본 원인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정당이 그들만의 정치 싸움에서 벗어나 국정을 제대로 살피고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비로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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