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는 대통령 심기 경호 중?
선거를 앞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대통령 ‘심기 경호’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심위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대통령 풍자 영상에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다. 방심위는 지난 1월에도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을 중계한 ‘지각 체크’ 유튜브 영상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접속 차단을 의결한 바 있다.
지난 2월 23일 방심위는 통신심의소위를 긴급 소집해 틱톡 등에 게시된 윤석열 대통령의 풍자 영상을 접속 차단 조치하기로 했다. 해당 영상은 ‘가상으로 꾸며본 윤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1월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왔다. 44초 분량의 이 영상은 윤 대통령의 연설을 짜깁기한 것으로 “저 윤석열 국민을 괴롭히는 법을 집행해온 사람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윤석열 정부는 특권과 반칙,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방심위 회의엔 여권 추천인 황성욱, 김우석, 이정옥, 허연회 위원 등만 참석했다. 방심위원 정원은 9명인데 잇따른 해촉으로 현재 야권 추천 위원은 윤성옥 위원만 남아 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위원 4인은 만장일치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된 해당 영상 22건에 대해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방심위는 결정에 대해 “‘가상’ 표기와 관계없이 오인할 여지가 있고, 최근 허위조작 콘텐츠의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측면에서 시정요구했다”고 밝혔다.
■ ‘명예훼손’에서 ‘사회혼란 야기’로
방심위의 결정을 두고 전문가와 시민사회에서 과잉대응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가상으로 꾸민 영상임을 적시하고 있고, 내용상 건전한 사회통념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 믿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기에 이는 풍자적 표현물”이라며 “오히려 이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담고 있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 강하게 보장받아야 할 정치적 표현물”이라고 말했다.
통신심의소위는 해당 영상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의 근거로 ‘사회혼란 야기’를 들었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에 따르면 삭제·차단 요청의 근거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서 류희림 위원장 보고를 거치면서 ‘사회혼란 야기’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21일 서울경찰청은 방심위 법질서보호팀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이라며 틱톡 등에 게시된 대통령 연설을 짜깁기한 풍자 영상의 삭제·차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다음 날인 22일 방심위 사무처는 정보통신망상 명예훼손 담당부서인 권리침해대응팀에 공문을 접수하기로 했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는 “류희림 위원장에게 보고 후, (명예훼손이) 갑자기 딥페이크 정보로 탈바꿈되더니 ‘사회혼란 야기’ 정보 담당부서인 정보문화보호팀에서 공문을 접수하고 예정에 없던 긴급소위가 소집됐다”며 “대통령과 같은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신청은 당사자 또는 대리인으로 심의신청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심의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각하’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영상을 ‘사회혼란 야기’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심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론노조는 지난 2월 23일 성명을 내고 “경찰과 방심위가 이를 딥페이크 정보로 둔갑시킨 것은 단순 풍자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으니 접속 차단 명분을 만들기 위한 과잉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 위원장은 “딥페이크 기술을 썼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아니라 해당 영상을 패러디물로 볼 수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라며 “합리적으로 봤을 때 패러디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사실로 오인할 만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의 발언, 특히나 대통령과 관련한 패러디를 심의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하다”라고 지적했다.
■ 경찰 압수수색 예고
접속 차단은 사업자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방심위의 ‘접속 차단’ 결정은 방심위와 협약을 맺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11개 인터넷 플랫폼 업체에 시정 요청으로 통보됐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사업자는 시정 요청을 거절할 수 있지만, 방심위의 결정에는 실질적인 강제력이 있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사업자가 시정 요청을 그대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방심위가 의결을 바탕으로 요청을 한 이상 더 이상 자율규제 요청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업자들이 판단을 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지만, 조치 이행 여부에 대해 방심위에 통보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거절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건은 행정소송 대상이 된다. 강제력이 없는 조치라면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성순 민변 미디어언론 위원장은 “지금 플랫폼이 정부에 납작 엎드려 있는 상황에서 방심위가 민간자율규제기구라는 걸 악용하고 있다”라며 “사실상 정부 규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영상 작성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예고했다. 지난 2월 26일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영상을 올린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를 확보했고, 당사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구체적 행위를 했는지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해당 영상은 ‘가상’이라는 것을 대놓고 말했다. 이는 풍자물이다. 이를 경찰은 명예훼손이라며 수사를 하고 있다”라며 “이 같은 검열과 형사처벌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표현물을 올리면 제재대상이 되고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협박을 하는 것이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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