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필수의료 인력이 바라본 ‘의료대란’[메디칼럼](36)
2024. 3. 1. 15:31
솔직히 말하자면, 지방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외과 교수, 그것도 외과 내에서도 삶의 질이 가장 떨어진다는 이식외과 교수로서, 의대생이 2000명이 더 들어온다 해서, 내 삶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 일이 좀 바빠지겠지만 혹시 아는가? 정말 정부 말대로 10년 뒤 2000명 중 일부라도 외과를 지원하면 나에게는 이득일지도. 또 필수의료 패키지의 내용도 다 지방과 필수의료를 살리자는 내용인데, 이게 과연 나에게 불리할까?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도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그래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위 기피과라는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파업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교수들이 그들의 사직을 종용한 것이 아니듯,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판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를 놔두고 병원을 나간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의사를 싸잡아 욕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N번방 사건의 범죄자를 빗대어 ‘의주빈’, 이스라엘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하마스를 빗대어 ‘의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바로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났으며, 환자를 인질로 삼아 정부와 투쟁하려 한다는 생각이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바로 정부가 현재 상황을 바로 ‘의료대란’이라 명명함으로써 촉발됐다. 언론은 앞다퉈 환자의 불편이 길어지고 있으며, 곧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질 것처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반응에 기름을 붓는 듯한 의협 등이 보여주는 선민의식의 극치적 망언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 ‘전공의 사직을 지지’ 등도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어쩌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태도다. 정부가 공개한 2000명 증원의 근거로 내세운 3개의 논문 어디에서도 한꺼번에 2000명을 뽑으란 말은 없다고 한다.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500~700명으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장관이 용산의 질책을 받고 갑자기 2000명으로 늘었다는 루머도 있다. 의대정원 증가에 맞춰 보건복지부 차관은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에게 협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이 사태는 의사들의 반발과 집단행동을 유도한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전략은 120% 성공해서 국민의 80%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여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의료대란’ 사실 호도
그런데 한번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전공의는 의사 중에서 가장 초보 단계의 의사다. 실제 환자를 보다가 전공의에게 책임이 막중한 의료행위를 시키는 경우도 없고, 또 전공의의 잘못된 행위로 환자가 피해를 보게 될 때 책임을 지는 것은 그 환자의 주치의인 교수다. 전공의가 없다고 ‘의료대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전공의가 자리를 이탈해서 환자가 잘못됐을 때 복지부 차관의 말처럼 전공의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수련병원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저것이 얼마나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상당히 기계적인 법 적용으로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한다고 하는데, 미래에 나올 2000명의 추가 의사를 위해 현재 수련 과정에 있는 수많은 전공의를 없앤다는 건 심각한 사회적 손실이다.
또한 지금 이 정부의 현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김윤 교수의 말에 의하면, 현재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실제 그 병원의 수준에 맞는 중증 환자를 40%밖에 보지 않고 있으므로, 상급종합병원은 평소의 40% 환자를 보고 나머지 환자를 2차 병원급 수련 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에서 보면 6개월도 문제없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6개월을 버틸 수 있는데 ‘심각’ 단계의 의료대란인가? 의료대란이 맞는다면, 전체 의사 수의 8%밖에 안 되는 가장 초보적인 의사 없이는 의료체계가 돌아가지 않도록 만든 보건복지부는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지금 현 상황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1차, 2차, 3차 병원의 의료 전달체계가 조정되고 있다. 김윤 교수의 큰 그림대로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만일 보건복지부에 슈퍼컴퓨터와 AI가 있어 전국 모든 환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가장 알맞은 전국의 병원으로 보낼 수 있다면, 어쩌면 의사가 지금보다 더 적어도 될지 모른다.
총선 전 ‘공공의 적’이 필요하진 않았나
또 하나 재미있는 지점은 이미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은 전공의가 없거나 극도로 부족한 병원이 많아 전공의가 없다고 해서 평소 하던 업무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취과 전공의가 없어 수술이 줄어서 오히려 평소보다 더 편하다. 당직? 거의 맨날 서던 건데 뭘 새삼스럽게. 우리 외과 주니어 교수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뭔 그리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인터넷으로 욕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수술하고 환자 보고 밤새우고 그것만 했는데.
현시점에서 환자들의 가장 불편한 부분은 바로 내가 원하는 병원을 원하는 때에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 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병원에 예약했는데 여기에 가지 못한다고? 억울할 만하다. 그것도 대통령이 취임사에 35번이나 ‘자유’를 외친 정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그러나 앞으로는 국가가 정해주는 가이드라인 안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을 택해야 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현 사단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슈를 이슈로 덮으면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공공의 적이 필요했던 정부·여당과 그것에 맞게 스파이보다 더 스파이처럼 의사들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의협, 그리고 평소 사회주의적 의료체계를 이상향으로 삼고 있던 일부 의료관리학자들의 공동의 이득이 맞아떨어져 생긴 일이라고 분석해 본다. 이번 일로 많은 고통을 받았던 우리 외과 전공의들이 1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병원에 복귀하기를 기원해 본다. 마음의 상처는 평생 씻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