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밀가루 포대가 널려 있었다” 끔찍했던 가자시티 참사 현장…휴전 협상은 ‘시계 제로’
1일까지 최소 112명 사망·700명 부상
이·팔 진실 공방 속 국제 사회는 ‘부글’
바이든 “휴전 논의에 악영향” 난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굶주린 주민들이 구호품 트럭에 몰려드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벌어지면서 1일(현지시간)까지 최소 112명이 숨지고 700명이 다쳤다. 지난해 10월7일 전쟁 발발 이후 단일 사건으론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이번 참사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진실 공방을 벌였다. 국제사회가 공을 들여왔던 휴전 협상도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은 지난달 29일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이스라엘군을 비판했다.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의사인 예히아 알마스리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하며 “거리엔 시체와 피에 흠뻑 젖은 밀가루 포대가 널려 있었다”며 “머리와 목, 사타구니 등에 총상을 당한 사람을 여럿 봤다”고 전했다.
주민 사이브 아부 술탄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검문소 주변에선 평소에도 이스라엘군 총격이 잦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구호품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우리 가족은 지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처음으로 구호품 배급 현장에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놀랍게도 이스라엘군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고 우리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4시쯤 가자시티 서쪽 나부시 교차로에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 30대가 들어서자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이스라엘군은 총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와 관련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설명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아슈라프 알키드라 가자지구 보건부 대변인은 이날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이스라엘 점령군이 자행한 추악한 학살”이라며 날을 세웠다. 특히 부상자 상당수가 이송된 알아우다 병원의 무함마드 살하 원장은 가디언에 “환자 대부분 총에 맞은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총에 맞아 사망한 주민은 소수고, 상당수는 갑자기 몰려든 인파에 압사했거나 트럭에 치여 숨졌다고 반박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당시 구호품 수송 트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탱크를 출동시켰고, 그곳에서 트럭에 깔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목격했다”며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탱크로 조심스럽게 경고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설명 자료로 공개한 영상을 근거로 “탱크 부대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며 “군중에게 직접 사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여론은 들끓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은 데 깊은 분노를 느낀다”며 “모든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인도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즉시 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모인 주민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며 “절박한 상황에 놓인 가자지구 민간인은 도움이 필요하다. 유엔은 일주일 넘도록 구호품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태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도 소집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협상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카타르·이집트 등과 함께 중재 총력전을 펼쳤던 미국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텍사스주 국경 지역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휴전 논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며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며 “아마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 협상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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