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에 중독된 조국…’이제 그만하세요’ 말하고 싶다”
“특별히 조국 겨냥한 게 아니라 일말의 근거를 좇았을 뿐…선량한 시민의 제보가 실체를 밝혔다.”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조국 딸, 두 번 낙제하고도 의전원 장학금 받았다" 2019년 8월 19일 한국일보는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민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뒤 여러 차례 유급을 당하고도 총 1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는 소위 '조국 사태'의 서막을 열었다. 기사가 나온 바로 그날,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받은 사람이 국회에 있었다. 한국일보와 함께 조민씨의 의혹을 캔 이준우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보좌관이었다.
그는 이날을 기점으로 조국이란 인물에 천착했다. 이후 '조민씨 지도교수의 의료원장 선발 특혜 의혹' '조국 전 장관의 이중 월급 수령' '정경심 전 교수의 무급휴직 배경' 등 조국 일가와 관련된 50여 건의 기사에 자료를 제공했다. 작년 6월 국회를 나온 이 보좌관은 이중 극적인 사연이 있는 기사를 고른 뒤, 그간 모은 자료와 카카오톡 대화 등을 바탕으로 취재기를 써내려 갔다. 그 결과물이 지난 2월 7일 발간된 책 《그는 그날 머리를 쓸어넘기지 않았다》이다.
책 제목은 출근길에 여유를 부리며 머리를 넘기던 조 전 장관이 딸의 입시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긴장하며 태도가 달라지던 모습에서 따 왔다고 한다. 현재 국민의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의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를 2월 26일 국회 앞에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한 분들께 제 책이 뗏목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조 전 장관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주축이 된 '조국신당(가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찻잔 속 태풍으로 예상했다. 정당을 만들려면 당헌∙당규를 통해 가치를 옹립해야 한다. 그런데 조국신당의 가치가 무엇인가. 온갖 거짓말과 비리로 좌파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조국이 유권자를 아우르는 가치를 만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잔인한 공천학살이 변화를 가져왔다. 공천에서 배제된 친문(親文) 세력이 복수를 다짐하며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는 조국신당에서 보따리를 풀고 '반명(反明) 전선'을 만든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 조 전 장관의 팬덤을 감안하면 자체적인 결집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결집력을 가늠할 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 정경심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2년 간 총 2억4000여 만원의 영치금을 받았다. 이 영치금을 낸 사람 수가 조국신당 당원 가입자 수와 아마 비슷할 것이다.(조국신당은 2월21일 "당원 가입자가 3만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후원금의 경우 50억원대 자산가인 조국에게 그 액수가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하겠지만, 그는 이미 조공에 중독됐다. 역시 많은 후원금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할 것이다.(조 전 장관은 2월25일 "후원금은 '다다익선'이라고 하니 꼭 후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조 전 장관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에 비해 검찰 수사가 너무 가혹했다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생각한다. 조민씨의 장학금 수령이 2019년 8월 중순 언론에 보도되고 이후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는데도 검찰은 일주일쯤 지나 압수수색을 했다. 늑장 수사에도 너무 많은 증거와 증언이 나와 검찰도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문서 위조와 사기는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는 아주 질이 좋지 않은 범죄다. 조국 일가족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개정된 법과 제도만 수십 개가 넘는다. 비난만 받고 처벌을 받지 않겠다는 건 모든 범죄자의 뻔뻔한 바람이다."
-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함께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한 위원장도 이른바 '자녀 스펙 부풀리기' 의혹을 받고 있는데 무혐의로 수사가 종결됐다.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책에도 썼지만 조국의 잘못을 계속 캐낼 수 있었던 주요한 계기는 선량한 시민들의 제보였다. 특히 그의 위선에 실망한 측근들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한동훈에 관해서는 결정적 제보가 없다. 만약 제보가 있고 물증으로 뒷받침됐다면 언론이 기사화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여당보다 의원수가 많은 야당이 총동원되어 조사했지만 아무 것도 밝히지 못했다. 범죄 정황조차 없었기 때문에 수사당국도 파헤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조국에 관해 분명한 근거를 갖춘 내용만 언론에 전달했다. 조국은 이 때문인지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검찰조직을 싸잡아서 비난만 하고 있다."
- 정치권에서 위선자로 비판받는 인물은 조 전 장관만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조국만 타깃으로 삼았나.
"조국을 타깃으로 삼은 적 없다. 단지 일말의 근거를 좇다 보니 조국이란 인물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조국과 같은 부산 출신이고, 지역 인사들과 가깝다 보니 정보를 수집하는 데 유리한 점은 있었다. 언론은 명백히 근거가 있는 것만 보도했다. 게다가 조국 사태로 국론분열이 일어난 것은 순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이라는 '정치적 선택'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조국과 86운동권 세력의 '이중성'을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했다."
"결국 토마토 아닌 사과가 된 조국"
조 전 장관은 한때 진보와 보수 진영 양쪽에서 지식인으로 칭송받던 인물이었다. 1992년 울산대 교수 시절 남한 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을 때는 이념론을 떠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가받곤 했다. 시사저널도 2013~15년 그를 '차세대리더'로 3년 연속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조국 사태가 터진 뒤로 그는 모교인 서울대로부터 2019~21년 '부끄러운 동문' 3년 연속 1위라는 불명예에 휩싸였다. 이준우 기획위원은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법대 교수가 본인 행동의 위법성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란 생각에 잠식돼 버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가족 전원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2010년 12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말과 행동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도 많다. 겉과 속이 다 빨간 '토마토'가 되면 좋겠지만 겉만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일 때가 많다. 내 딸은 외고를 거쳐 대학 이공계에 진학했는데,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아이를 위한 양보라던 문서 위조는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랐다. 이 기획위원에게 '조 전 장관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딱 일곱 글자.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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