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민주당 내홍에 ‘낙동강 전선’도 흔들흔들
현지 여론은 국민의힘에 다소 고전…김두관·전재수 등 현역 개인기에 의존하는 양상
(시사저널=부산·경남 = 박나영 기자)
#1. "웅상 지역에 KTX 정차역을 만들겠습니다." 겨울의 끝자락, 매서운 낙동강 바람이 몰아치던 2월26일 오후 2시 양산 시내에서 10여km 떨어진 동면 법기리 논두렁 옆. 이 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호 공약'을 발표했다. 그가 시골 비포장길 위를 기자회견 장소로 정한 것은 이곳이 양산의 발전에 교두보를 마련할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KTX 철로가 위치한 법기리는 주민들의 오랜 바람인 양산 남부권 KTX 정차역이 들어설 후보지다. 김두관 후보가 KTX 정차역을 만들어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뒤편 철도 위로 KTX 열차가 빠른 속도를 내며 지나갔다.
#2. "양산에 제 정치적 운명을 걸겠습니다." 같은 날 오전 10시 김두관 후보에게 도전장을 낸 김태호 국민의힘 후보가 '양산을 바꿉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빨간 점퍼를 입은 채 양산시청 기자회견장에 섰다. 김 후보를 중심으로 16명의 당 관계자가 나란히 서서 뜻을 같이했다. 중앙당의 전략공천에 김태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한옥문 전 예비후보도 함께였다. '이겨야겠다는' 목표만 갖고 하나로 뭉친 모습이었다. 이날 '기존 예비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따르게 된 과정'과 '다른 지역에서 온 후보가 양산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의가 쏟아지자, 김태호 후보는 정치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전직 경남지사 대결 빅매치' 김두관 vs 김태호
수성이냐 탈환이냐. 22대 총선 민심을 가늠할 바로미터인 '낙동강벨트'를 차지하기 위해 양당이 정치 거물을 내세우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대 '빅매치'는 단연 양산을에서 연이은 당선을 노리는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당의 요구로 지역을 옮긴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현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의 대결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상징성을 가진 지역이니만큼 어떻게든 지키고, 어떻게든 뺏겠다는 양당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인물 대 인물 구도다. 김태호 의원은 거창, 김두관 의원은 남해에서 군수를 지내며 정치·행정에 입문한 '닮은꼴'이다. 두 의원 모두 경남지사를 지냈고 이를 발판 삼아 대권에 도전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태호 의원이 32·33대, 김두관 의원은 34대 지사였다. 33대 선거에선 한 차례 맞붙었는데, 김태호 의원이 37.7%포인트 차로 압승했다. 이번 총선이 18년 만의 재대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오랜 기간 서로의 정치생활을 지켜봐온 만큼 상대의 존재감을 높이 사며 상호 비방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여야 경남 대표주자의 정치적 행보도 갈릴 전망이다.
경남은 국민의힘 텃밭이지만, 양산을에선 20·21대 총선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는 또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월등히 높아졌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5만3491표(52.12%)를 얻어 이재명 민주당 후보(4만3893표·42.78%)에게 10%포인트 가까이 앞섰다. 그해 치러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양문석 민주당 후보를 23.61%포인트 차로 크게 이겼다. 4년 전 총선에서 1.68%포인트 차로 신승했던 김두관 의원 입장에선 위기감이 들 만하다.
김태호 의원은 선거를 불과 50여 일 앞두고 차출돼 이제 막 캠프를 차렸지만 경남지사를 2번이나 지낸 만큼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다. KBS·한국리서치 조사(2월17~19일, 500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 전화면접)에서 김태호 40%, 김두관 37%로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앞섰다.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 꽃'의 조사(2월19~20일, 512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3%p, 전화면접)에서도 김태호 39.5%, 김두관 37.8%로 접전이지만 우위를 차지했다.
양산에서 규모가 큰 편인 덕계종합상설시장에서도 팽팽한 민심이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생선가게 주인은 "김두관 의원의 오랜 팬"이라며 "잘했다고 평가하는 만큼 이번 총선에서도 그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 같은 자리에서 30년 동안 채소가게를 운영해온 김아무개씨(여성·60대)는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며 김태호 의원이 "(도지사 때) 잘하셨기 때문에 양산 지역을 더 발전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 개통과 낙동강 수질 개선이 지역 주민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3년간 쌀가게를 운영해온 김아무개씨(32)는 "정치인들 믿지 않는다. 지하철 개통을 수십 년간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노력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전재수 "민심은 내게" vs 서병수 "연륜은 내가"
낙동강벨트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부산 북구·사상구·사하구·강서구와 경남 김해시·양산시 지역으로, 보수 텃밭인 영남이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노무현(김해), 문재인(양산)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만큼 친노-친문 계파를 지지하는 성향이 특히 강한 편이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253석 중 163석(약 65%)을 독점하는 압승을 거뒀으나 PK(부산·울산·경남)에서는 2016년 총선 때의 8석보다 1석 줄어든 7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부산 북·강서갑, 사하갑, 남구을, 울산 북구, 경남 양산을, 김해갑, 김해을 등 7곳이다. 울산 북구는 동구와 함께 공단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진보정당이 강세를 보여왔다. 울산 북구와 부산 남구을을 제외한 나머지 5석이 낙동강벨트 지역이다. 국민의힘은 21대에서 얻지 못한 지역을 모두 탈환해 PK 40석을 다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또한 사활을 걸고 이 7곳을 지켜내겠다는 전략이다.
양산에서 낙동강을 끼고 내려오면 이어지는 부산 북·강서갑에서도 현역 전재수 민주당 의원과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 간 빅매치가 펼쳐진다. 전 의원은 이 지역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찐' 토박이로, 3선에 도전한다. 서 의원은 2월7일 '낙동강벨트를 탈환해 달라'는 당의 요구를 받고 급하게 캠프를 꾸렸다. 부산시장을 지낸 서 의원은 해운대 4선 이후 21대 총선에서 부산진갑에 전략공천돼 당시 이 지역 현역 김영춘 민주당 전 의원을 누르고 5선에 성공한 바 있다.
2월27일 오전 방문한 북구 구포시장 상인들의 반응에서도 접전 양상이 확인됐다. "전 의원 덕분에 지역이 많이 발전했다" "변화가 크다" "너무 잘하고 있으니 3선 했으면 좋겠다"는 일부 시민의 반응에서 전 의원에 대한 호감이 읽히는 동시에 "한 게 없으니 바뀌어야 한다" "오래 했다.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도 들렸다. 서 의원의 출마에 대해서는 "남의 동네 뭐 하러 왔냐"는 '철새 정치인' 비판이 있는 동시에 부산시장 시절을 기억하고 지지하는 여론도 읽혔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문화·체육시설 설립' 등 두 후보의 공약이 유사한 만큼 이 지역 또한 인물과 정당의 경쟁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 공천 파동에 눈살 찌푸리거나 냉담
26일 저녁 지역 주민들에게 퇴근길 인사 중이던 전재수 의원은 시사저널과 만나 "민심 대 욕심의 대결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일할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한데,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온 서병수 의원이 욕심을 부린다는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와서 개시장도 없애고 보행로도 개설하면서 인프라를 많이 갖췄다. 당선되면 주민 염원인 체육·문화복합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27일 덕천동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서병수 의원은 "전 의원도 장점이 있고 저는 저대로 장점이 있는데 지금 분위기는 경험과 연륜을 가진 저를 주민들이 염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시장 시절부터 '서부산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KTX 노선이 구포역을 지나 김해공항과 가덕신공항까지 연결될 수 있는 터전을 닦겠다"고 말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그의 묘역이 있는 김해을에서 국민의힘은 공천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서 이 지역으로 차출된 조해진 의원은 예비후보들의 반발에 출마 선언 기자회견조차 열지 못한 상태다. 앞서 김해을 예비후보 5인이 '무소속 연대'를 추진키로 한 데 이어 2월24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조 의원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현역 재선 김정호 의원을 단수공천했다. 양산갑에선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과 민주당 이재영 전 민주당 양산갑 지역위원장이 지난 총선에 이어 두 번째로 맞붙는다. 북·강서을에는 여당 단수공천을 받은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과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지낸 민주당 변성완 후보가 일전을 치른다. 사하갑에서는 국민의힘에서 단수공천된 이성권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현역인 민주당 최인호 의원과 대결한다.
과거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길 때마다 낙동강벨트에서 일정한 성과가 나왔던 만큼 낙동강벨트는 이번 총선에서도 양당의 핵심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PK 지지율에 악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갤럽이 2월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국 정당 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이 41%로 36%의 민주당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지만, PK 지역만 떼어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48%, 민주당 31%로 오차범위 밖 격차를 보였다. PK에도 국민의힘과 민주당 콘크리트 지지층이 모두 있는데, 결국 당락을 좌우했던 중도층 민심이 지금의 민주당 내홍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기자가 2월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직접 만나본 부산과 경남 주민들 또한 서울에서 들려오는 민주당 공천 파동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관심 없다는 듯 냉담한 반응이 많았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간판보다는 김두관, 전재수, 김정호 등 지역구 현역 의원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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